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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May 19. 2023

호주  바닷가,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정적인 삶의 풍요로움에 대하여

호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여행을 갔다가 이름도 모르는 어디메에서 잠시 쉬었었다.

그때 일행과 잠시 떨어져 별생각 없이 홀로 바다에 내려갔는데 잊지 못할 장관이 내 앞에서 펼쳐졌다. 시커멓고 넓적한 바위들이 대평원을 이루는 가운데 시퍼런 바닷물이 그 사이사이를 맹렬하게 파고들다가 하얀 포말을 하늘 높이 뿜어대며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무섭기도 했고 의식이 끊긴 듯 잠시 멍하기도 했고 그러다 정신을 수습하니 오히려 마음이 평화롭게 가라앉았던 기억이 있다. 그땐 감성이 풍부한 젊은 시절이었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평생 다시 못 올 곳이라 생각해서 더 마음이 꽉 차 올랐는지도 모른다.


여차저차 내가 세웠던 삶의 계획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난 호주에 머물게 되었고 그 뒤로 그 바닷가 언저리를 꽤 여러 번 지나치게 되었다. 주로 한국에서 누군가가 왔을 때 유명 관광지인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모시기 위함이었다. 그때마다 가는 길목인 톨키에서 잠시 내려 예전의 그곳을 찾아 헤맸다.


내 기억이 분명하지 않아서인지 이곳저곳 다 들쑤시고 다녔는데도 그 바다와 바위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설령 같은 장소라도 물이 찾는지 빠졌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기도 하고 아침인지 저녁인지에 따라 날씨나 계절에 따라 그 풍경은 놀랍도록 변하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아쉬움과 감동으로 내 가슴에 남은 그 바다가 그곳 어드매에 있다는 기억만이 세월이 지나도록 선명하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같은 모래를 두 번 쥘 수 없다.

같은 바위를 두 번 디딜 수 없고

같은 이끼에 두 번 닿을 수도 없다.


무언가를 찾았을 때

무언가를 느꼈을 때

거기서 멈춰 내내 머물러야 한다.

시간을 재며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 순간은 결코 다시 찾아오지 않으니까..

내가 정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2011년 1월 4일 쓴 글에 2023년 5월의 사진을 덧붙였다. 맘먹으면 아침저녁으로 걸어갈 수 있는 전용 뒷마당 NO.16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이다. ^^ 봐도 봐도 새롭고 매일매일이 다르다. 20여 년 전 봤던 톨키 바닷가가 떠올랐다. 풍경도 다르고 그걸 바라보는 내 감정도 다르지만, 그냥 오래전에 느꼈던 그 감성이 떠올라 옛 글을 뒤적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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