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먹어야 더 행복할까?
최근 각기 다른 두 호주인으로부터 한국인과 밥을 먹은 경험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개인적 감상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해서 사족을 붙여 나눠볼까 한다.
1. 과도한 음식 평가
호주 지인은 다국적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데 마침 한국 파트너가 호주로 출장을 왔단다. 어느 날 그 파트너의 초대를 받아 멜번의 어느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몇 번의 한국 출장으로 한식을 맛있게 먹었던 경험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갔는데, 밥을 먹는 내내 좀 불편했나 보다. 음식이 새로 서빙될 때마다, 반찬 하나하나 마다 일일이 평가를 하더란다. 자신은 맛있어서 먹는데도 그는 '이건 제대로 된 한식이 아니다. 한국에선 이렇게 요리하면 큰 일 난다. 너무 달지 않은가. 뭐가 빠졌다....'등등.
나도 비슷한 상황에 대한 경험이 있어 웃음이 좀 나오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재료가 다르기도 하고 전문 인력 공급이 부족하기도 할 테고 여러 사정상 이곳 한식집이 한국의 식당만큼 제대로 손맛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또 호주 현지인의 입맛을 맞추다 보면 더 달거나 느끼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해를 떠나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수년 전 요리사들이 등장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뒤로) 나도 한국 사람들의 과도한 요리 평가를 좀 피곤하게 느끼곤 했다. 색감 식감 비주얼 가성비 맛을 시시콜콜 따지고 요리의 유래 식당의 역사까지 줄줄이 읊어대는 사람들을 보면 '이젠 화제 좀 돌려도 되지 않나?' 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 먹으면서도 미슐랭 심사관이라도 된냥 온갖 토를 달며 누가 더 날카로운 비평을 까다롭게 내는지 경쟁을 하는 것도 같다.
2. Eat and Run
한국에서 직장생활 중인 그녀는 동료들과 식사를 하며 충격을 받았단다. 어쩜 그리도 빠른 속도로 먹어치우고 자리를 뜨는지 경이롭다는 것이었다. 나도 소싯적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땐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적당히 식사를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한국을 가면 식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힘들다. 예전보다 식사량이 많이 줄었는데도 먹는 시간은 더 길어졌나 보다.
호주에서도 바쁜 아침이나 혼자 점심을 먹을 때는 30분 이내로 간단히 먹어 치우기도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할 때는 단순히 끼니를 때운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긴장을 풀고 대화도 나누며 천천히 식사를 한다.
음식을 먹을 때 딴생각은 접고 한 가지씩 음미하며 여유 있게 즐기고 사소한 음식도 감사함으로 먹으면 행복지수가 조금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12년 전에 비슷한 주제로 쓴 글이 있어서 같이 올려본다. 오래전 글이라 세월이 느껴지지만..
한국인의 ‘식탐’과 ‘맛집 탐닉’에 대하여. (2011/11/18 씀)
지난 한 달간 싱가폴과 한국을 다녀왔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내가 계획하는 일 중 하나는 당연히 지인들을 만나 밥을 같이 먹는 것인데, 어느 순간 한국인들의 식문화나 습관등이 내게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어 그것을 얘기해 보겠다.
1. 맛집 정보는 아주 중요해.
나이 지긋한 지인들과 인사동 국시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대화 중에 다음 주에 강원도 어디메로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한 분이 가만히 듣더니 지갑을 열어 명함을 불쑥 꺼냈다. “그 근처를 지나게 되면 이 식당을 꼭 가봐. 주인이 직접 상을 차리는데 음식이 아주 깔끔하고 괜찮아.” 난 이 분이 지갑에 맛집 명함을 들고 다닌다는 사실이 너무 의외였다. 이 분은 60대라는 나이와는 달리 아주 날렵한 몸매를 하고 계시며 2-30대에 입던 옷을 아직도 입는다는 분이신데 언젠가는 “난 평생을 살면서 배가 고픈 것도 모르고 음식이 맛있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어. 그냥 때가 되니까 먹고 남들이 먹으니까 먹는 거야. 살면서 누리는 중요한 복을 하나 놓친 거지” 하며 먹는 일에 관심 없는 자신을 한탄하셨기 때문이다.
좀 놀랐지만 그분의 감각을 믿을 만하기에 명함을 받아 넣으려는데 양쪽에 앉아있던 다른 지인 두 분이 ‘잠깐만’을 외치며 나를 제지했다. 자기 핸드폰에 그 맛집 번호를 입력해 놓아야겠다는 것이었다. 허걱!! 아니 왜???
나를 제지한 두 분 중 한 분은 위에 지병이 있어 모든 것을 심하게 선별해 드셨고 그나마도 반의 반 공기 정도를 어렵게 먹으시는 앙상한 분이었다. 게다가 서울도 아닌 강원도로 맛집을 찾아다닐 만큼 한가한 분들이 아님을 알기에 열심히 번호를 입력하는 그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2. 맛집 아무리 힘들어도 찾아간다.
미리 도착해 있던 친구 가족이 속초 버스 터미널로 픽업을 나왔다.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자마자 친구는 점심식사 예약을 하느라 분주했다. “4년 전에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이 집에 들러 무려 1시간 반을 기다렸다가 먹었잖니. 근데 너무 맛있었었어. 주소도 연락처도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열심히 뒤져보니 아직 이 식당 명함을 갖고 있지 뭐니. 우와!!”
내비게이터에 주소를 찍고도 조금 헤매며 찾아간 곳은 항구 앞에 늘어선 여러 개의 구이집 중 하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 ‘방송 탄 집’을 알리는 광고판이 떡 버티고 있었다. 식사 시간이 지나서였는지 그리 붐비지는 않았다.
모둠 생선 구이는 짜지 않고 꼬들하니 맛있었다. 친구는 연신 4년 만에 어렵게 다시 찾아 온 집, 기특하게도 명함을 버리지 않았던 것, 1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점을 꼽으며 엄청나게 운이 좋다고 즐거워했다.
3. 무엇을 먹느냐에 연연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지인들은 그 지역 레스토랑이나 맛집 정보를 꽉 잡고 있었고 음식이 무엇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줄줄이 풀어냈다. 나는 지인들의 이런 모습이 낯설었다. 나도 나름 미식가이고 먹는 것을 즐기지만 바쁜데 구태여 멀리 있는 특정 집을 찾아가지는 않고, 또 맛있게 먹은 집을 열심히 기억했다가 다시 가지도 않는다. 누가 맛있게 먹었다는 추천에 마음이 혹해서 일부러 찾지도 않는다. 오늘 이 집에서 맛있게 먹었어도 내일은 딴 집에 도전한다. ‘세상엔 더 맛있는 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호기심과 모험심 진취적 기상이 나를 단골집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그러다 죽 쑤는 경우도 많지만 의연히 또 다른 새로운 곳을 찾는다.
그런데, 내가 본 작금의 한국인들은 온통 무엇이 더 맛있는지에 관심이 많고 남들이 먹었다면 자기도 꼭 한번 먹어보려는 욕구가 대단한 것 같다. 블로그도 온통 요리법이나 맛집 추천이 판을 치고 방송 프로그램도 맨날 먹자판이다. 주변에 다양한 먹거리들이 넘쳐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빡빡하고 재미없이 반복되는 일상 중에 그나마 손쉽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 맛집탐방이라 너나없이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매달리는 건지는 모르겠다.
이런 작은 일상조차도 놓치지 않고 즐긴다는 면에서는 바람직한 것 같고, 한편으로는 그냥 검소하게 깔끔하게 먹으며 식탐을 좀 줄이는 것이 좋지 않을 까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