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기 Jun 15. 2023

호주, 시각장애 안내견 키우기 2년은 이랬다.

사람과 동물 간의 인내 헌신 사랑 이야기는 얼마나 이어질까?

호주에서 시각장애 안내견 키우기에 도전을 했었다. 가이드독 협회(Guide Dog Assocaition)에서 모집하는 자원봉사자에 지원하여 강아지를 1년간 집에서 키운 뒤 반납했다.(이 과정은 아래글을 참고) 강아지가 1살이 넘으면 그야말로 유년기를 지난 셈이라 센터에서 전문 조련사로 부터 20주에 걸친 집중강화 훈련을 받게 된다. 


여러 단계의 훈련과 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합격을 하면 안내견이 되고 이 과정을 다 마치지 못하면 등급에 따라 병원이나 양로원등에서 환자들을 위로하는 반려견(Companion Dog)등 다른 목적으로 사회 여러 곳에서 봉사를 하게 된다.


지난 연말 베키를 협회에 돌려보낸 뒤 5개월 만에 최종적으로 모든 시험을 통과했고 정식 안내견이 되었으니 졸업 퍼레이드에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뛸 듯이 기뻤다. 그녀를 만나려 1시간 반 차를 차고 달렸다. 

졸업 퍼레이드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약속된 장소에서 관계자와 접선을 한 뒤 약 30미터 간격을 두고 베키와 조련사가 함께 걷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우리의 존재를 알면 집중을 못하고 흥분을 할 테니 멀찍이서 뒤따라갔다. 협회의 코디네이터가 우리와 함께 걸으며 그동안 베키의 훈련 과정 등을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내가 알던 그 강아지가 맞던가!! 베키는 차가 오가는 도로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때에 맞춰 걸었고, 복잡 분주한 상가 거리도 한눈팔지 않고 걸어 나갔으며 기차역에서도 상황에 맞는 판단을 주저 없이 하며 빠른 속도로 안내했다. 강아지 일 때는 여기저기 정신 팔고 부산스럽게 다니더니 어찌 이리도 영리하고 야무져졌는지 그 교육과정이 너무도 궁금했다. 

아빠 한번, 오빠 한번, 엄마 한번, 베키의 눈맞춤.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다 돌고 우리는 마침내 모퉁이에서 만났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베키는 이내 우리를 알아채고 예전처럼 점프를 하며 기어올랐다. 격렬한 포옹과 축하의 시간들. 이제 베키는 실주인을 만나 짝과 호흡을 맞추는 마지막 과정을 훈련한 뒤 협회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임을 이내 알았는지 한 번씩 눈맞춤을 애틋하게 하며 아쉬운 해후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가이드 독 협회와 교류하며 보냈던 2년여의 시간도 이렇게 정리가 됐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소회를 몇 가지 나눠보겠다.


첫째, 협회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프로그램. 

강아지를 데려오기 전 자원봉사자의 신분확인과 가정환경을 일일이 탐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4주 6주 간격으로 가정방문하여 나이에 맞는 기본 훈련을 시켰다. 정기적인 수의사와의 건강검진, 봉사자가 어려움을 느낄 때 만날 수 있는 카운셀러, 휴가를 갈 때 맡길 수 있는 임시 보호소등 기대도 안 한 완벽한 서비스가 필요할 때마다 마련되어 있었다. 한 마리의 개도 이렇게 관리받고 훈련받으면 제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둘째, 협회가 봉사자를 대하는 자세. 

개에게는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하며 예산을 쓰지만 봉사자에겐 단돈 1달러도 지원이 없다. 개를 데리고 협회며 병원이며 드나들 때 기름값 한번, 커피 한잔 얻어먹어본 적 없다.(단출했던 크리스마스 파티 예외) 내가 좋아서 자원해하는 일이지만 일 년을 넘게 돌보며 아침저녁 산책 시키고 먹이고 씻기고 하는 노동과 시간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크단 말인가! 

협회는 봉사자의 노고를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전혀 다른 방법으로 보상을 한다. 베키가 훈련을 받는 동안 수시로 성장 과정을 알리고 시험결과를 전화로 알려주고 모든 단계마다 사진을 보내며 연락을 해서 우리가 함께 키우고 있다는 자긍심과 주인의식 연대감을 갖도록 북돋워 준다. 우리 가족은 아들이 학교에서 받는 것보다 베키의 성장에 관한 리포트를 더 많이 받는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장애인 한 명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개 한 마리 키우는 일에 이렇게 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코로나로 락다운이 길어지면서 이 시간에 집에서 가족이 함께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며 이 낯선 세계에 뛰어들었었다. 베키를 통해 정말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했고 배웠고 즐거웠는데 2년 만에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니 벅찬 보람을 느꼈다. 



청각 장애 안내견 도넛 이야기.


얼마 전 만난 지인을 통해 시각뿐 아니라 청각장애를 돕는 안내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는 30살 즈음 어떤 병을 앓았는데 그 뒤로 서서히 청각을  잃어 후천적 장애인이 되었단다. 가정을 꾸리고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던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졌다. 

어느 날 라이온스클럽이 후원하는 안내견 도넛을 만난 뒤 그녀의 일상은 조금씩 회복됐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를 때, 전화벨이 울릴 때, 뒤에서 경적을 울릴 때 도넛은 그녀 옆에서 10년이 넘도록 분주하게 일했다. 

세월은 흘러 도넛은 늙고 병들었다. 클럽에서는 규정상 안내견을 한 마리만 소유할 수 있다며 도넛을 협회로 돌려보내면 젊고 팔팔한 새 안내견을 보내 주겠다고 했단다. 깊은 고심에 빠졌던 지인은 도넛을 마지막까지 지키기로 했다. 평생을 자기를 위해 헌신했으니 이젠 자기가 도넛을 보살펴 줄 차례란다. 주인을 돕기는커녕 짐이 되어버린 안내견이지만 지인은 일상의 불편을 감수하고 힘 빠진 노견과 희로애락을 나눈다.





그들이 서로 돌보고 의지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구나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론 기술발달로 로봇이 이 모든 서비스를 대체할 세상이 곧 오겠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그때가 오면 촉촉하고 따뜻했던 나의 경험과 감정들은 박제되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인의 '드림 하우스'는 이렇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