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고봉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호주에서 1월은 휴가철이다.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하면 어른들도 일제히 연차를 3-4주씩 쓰며 온 가족이 산으로 바다로 본격적인 여행을 떠난다. 우리 가족은 '호주의 지붕'으로 불리는, 호주에서 가장 높다는 코지오스코 산으로 2주일간 캠핑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빅토리아주에서 뉴사우스웨일스주로 7시간가량 운전을 해야 하는 거리라 가는 길에 벤즈데일쯤에서 하루이틀 쉬고 오는 길에 야카단다에서 친구를 만나 하루이틀 쉬고 산 근처 캠핑장에서 일주일 가량 머물며 여러 등산로를 탐색해 보자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았다. 폭풍을 동반한 비가 오락가락할 거란다. 텐트를 치고 불안하게 하늘만 쳐다볼 수는 없어 고심 끝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했고 예산이 늘어난 만큼 계획을 10일 이내로 단축했다.
그렇게 집을 나선 지 4일 뒤, 우리는 마운트 코지오스코(Mt. Kosciuszko)를 등반하게 됐다. 해발 2,100미터에 이르는 호주의 최고봉이다. 한라산보다 조금 높다. 겨울이면 흰 눈으로 덮여 스키를 타는 리조트도 개발되어 있는데 여름이면 등산객들이 이 스키 리프트를 타고 산중턱까지 오른 뒤 산 정상까지 하이킹을 한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 정상을 등반한 뒤 내려와 또 다른 곤돌라를 타고 옆 등산로(겨울엔 스키 슬로프)를 관광한 뒤 산 밑둥에서 봅슬레이를 타는 일일 패키지 입장권이 있어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고 갔다.
한국의 산이 세모나게 뾰족하다면 호주의 산은 평평하고 네모(사다리꼴)에 가까운 듯하다. 그래서 낮은 산들은 이름만 산일뿐 언덕 같다는 느낌이 들고 (특히 한국사람에게는) 높은 산은 초반에 경사가 심해 힘들지만 어느 정도 오르면 오히려 완만하고 수월해진다.
코지오스코 산도 비슷한데 다소 험난한 부분을 리프트를 타고 훌쩍 올라왔더니 이후의 등산은 산책에 가까울 만큼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다. 근데 이것도 오르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고 오르기 전까지는 옷이며 간식이며 신발이며 간만의 하이킹에 만반의 준비를 하기는 했었다. 아주 우습게 볼 산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캐나다 지인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 이 산에서 조난 당해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살아 내려왔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늘은 푸르게 맑고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니는데 간간히 시원한 바람도 솔솔 부는 최상의 날씨였다. 광활한 산맥들 사이로 난 등산로는 나무나 철판으로 정비가 되어 있기도 하고 포장이 안된 돌길 흙길도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오르락내리락 굽이굽이 돌다 보면 호수도 나오고 시냇물도 흐르고 폭포도 나타났다.
작은 물고기들이 날렵하게 헤엄을 치고 야생화는 바위틈에서 자유롭게 하늘거렸다.
광활한 대자연에 둘러싸여 한걸음 옮길 때마다 눈을 돌릴 때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내가 움직이는 것인지 산이 움직이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호주의 산은 호주 문화를 닮았고 호주 사람을 닮았다.
중간중간 간식도 까먹으며 설렁설렁 오르다 보니 숨이 차지도 않았는데 정상에 도달해 있다. 죽어라고 애쓰지 않는데도 목표에 도달해 있고 무언가가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는 걸 보니 정상이 맞는데 눈에 띄는 정상석도 없다. 한쪽 구석의 금이 쩍쩍 간 작은 표지판이 여기가 정상이라고 확인을 해주는 정도니 인증샷을 찍기도 그렇다. 즐기면서 올라왔음 됐지 누구에게 떠벌리려고 인증을 하냐는거다.
세상만사 잊고 두리번대며 올라왔는데 막상 와보니 꽤 오른 거리이고 높이였다. 누구든 도전하고 멈추지 않으면 어느새 정상을 찍은 멋진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 누구든 품어주는 넉넉하고 낙천적인 산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끼리 사진을 찍으며 성취감을 만끽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아기를 업고 등반한 젊은 엄마도 몇몇 있다. 간단하게 싸 온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들. 드론을 날려 풍경을 촬영하는 사람들...
새해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호주 최고봉 오르기를 간단하게 클리어하고 내려가는 발걸음은 더 가볍고 즐거웠다. 아름다운 풍경들을 다시 한 번씩 눈에 담으며 내려가다가 나는 두 눈을 번쩍 뜬 채 깜짝 놀라고 말았다....(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