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절벽, 화석숲, 물개-호주 바닷가 트레일을 걷다.

250킬로 Great South West Walk은 이렇다.

by 몽기

이날은 브릿지 워터만(Cape Bridgewater)에서 출발하여 어제의 종착지점이었던 물개서식지까지 왕복 10여 킬로를 3시간여에 거쳐 걸었다. 주차를 하고 트레일에 들어서자마자 어제와는 전혀 다른 토양과 지형에 놀랐다. 바람과 파도, 석회암이 빚어낸 화석숲(Petrified Forest)이 나타났다. 나무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화석으로 굳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석회암이 빗물에 의해 용해되었다가 다시 굳어져 만들어진 ‘솔루션 파이프(solution pipes)’ 로 그 기둥들이 나무숲처럼 보여 붙인 이름이란다.


수백만 년 동안 자연이 쌓아 올린 돌기둥들이 빽빽이 들어선 이 숲은 혹성탈출 영화의 배경처럼 황량하고 거칠고 푸석하면서도 기이하고 신비로웠다.


그곳을 지나면 이번에 수십만 년 전 터진 화산의 흔적으로 여기저기 뜨겁게 둥글게 패인 돌바닥들이 나타난다. 지형이나 지질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땅바닥에 집중하며 걷다가 잠시 멈추어 흙을 만져보기도 하고 돌덩이를 360도 돌아보며 관찰하다 사진도 찍으며 고고학자처럼 걸었다.


도대체 이 트레일은 뭔가? 잠시도 딴생각을 할 수가 없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하늘의 구름부터 저 멀리 바닷 풍경, 주변에 쌓인 돌덩이들, 발밑에 깔린 모래흙까지 시시각각 변하며 오감을 붙잡는다. 나를 둘러싼 세상 전부가 내 움직임을 감지하며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터벅터벅 걷다 보면 어제와는 다른 물개 서식지가 나타난다. 칠 벗겨진 안내판에서 물개에 관한 재미난 팩트를 읽었다. 뉴질랜드 출신 물개와 호주 출신 물개들은 외형이나 생활방식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5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바위 왼쪽 오른쪽으로 서로의 구역을 정한 뒤 침범하지 않은 채 평생 따로 살아간단다. 왜 그런 거지? 물개들의 출신 지역과 그런다는 걸 누가 어떻게 연구한 거지?

1798-1825년 첫 유럽 이주민들이 멜번을 발견하기도 이전에 포틀랜드에 도시를 세우고 이 외딴 바닷가에 마을을 세우려 했던 건 물개 때문이었다. 바위 위에 널브러져 낮잠 자는 물개들을 포획하여 밍크 가죽과 기름을 유럽에 팔아 큰돈을 벌었다. 밍크는 모든 가죽 중에서도 최상으로 꼽혔고, 부들부들 화려하고 따뜻한 밍크코트가 부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일찌감치 이곳에서 물개 포획이 금지되고 보호를 받게 되면서 산업은 사라졌고 이주민과 마을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이 길에서 만난 풍경과 사연과 역사를 들춰보며 걷다 보니 어제의 종착점에 이르렀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방문자 노트에 흔적도 남기고 과일 하나, 초콜렛 한쪽 간식을 먹으며 쉬다가 오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다시 캥거루를 만나고, 해안 절벽길을 걷다가 바짝 마른 돌길을 지나며 몇 시간 전 느꼈던 감정들을 곱씹었다.

세상을 지으신 조물주의 손길이 그저 놀랍다. 내가 이 땅에 오기 전부터 켜켜이 쌓여 온 시간들은 나 이후에도 알아서 잘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나의 어깨는 가벼울 수밖에. 하루가 잘 갔고 다리가 단단해졌으니 또 감사하다. 배가 출출하니 저녁거리는 좀 궁리해봐야 한다. 뚜벅이 여행자의 하루는 그냥 이렇게 단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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