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니 육아 경력 연차가 자연스레 쌓이고, 사회와의 경력 단절 기간도 그와 비례해 점차 늘어만 갔다. 십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놀았다는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벗기 위해, 고작 할 줄 아는 게 애 키우는 거밖에 없다는 억울함을 벗기 위해. 운전도 그 나이 먹도록 여태 못하고, 뭐 한 게 있다고 젊은 애가 집구석에 들어앉아 아프다고 하는지 한심스러운 눈으로 혀를 끌끌 차는 말들에 분하고 원통해서 보란 듯이 나는 일터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경단녀에서 십 년 만에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마치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십여 년 간 만두만 먹다가 나온 사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오자 햇살이 내리쬐는 게 눈부셨고, 파란 하늘과 바람 냄새가 생소했으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미래로 온 것 같아서 그저 막막했다. 나의 정체된 삶과 달리 바깥세상은 달라진 것들로 가득했다. 십여 년 만에 나간 바깥세상은 어지러웠다. 요즘 사람과는 거리가 먼 나의 첫 바깥세상에서는 눈치도 필요했으며 아주 부지런해져야만 했다.
바깥세상에 나온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억지로 발을 뗐지만 그게 시작이 되었다.
스물셋에 면허를 따고 한 번도 운전해 본 적도 없는 나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무슨 용기가 났는지 도로연수를 받고 중고차를 사서 거북이 운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차하다가 화단에 올라가기도 하고 차선 변경을 못해서 가까운 길도 돌아갔다. 몇 달 후 이사를 했는데 기존 다니던 어린이집에 보내느라 아침저녁으로 먼 거리를 가을 겨울이 픽업을 하면서 운전 실력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아침 7시 50분에 집을 나선다. 네 명의 아이들을 좁은 차에 태운다. 봄이와 여름이는 초등학교 앞에 내려준 다음, 가을이와 겨울이는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나는 다시 직장으로 간다. 퇴근 후 어린이집으로 가면 거의 마지막까지 어린이집 교실에 남아 엄마를 기다려야 했던 겨울이를 안고 가을이도 함께 차에 태우고 다시 집으로 간다.
7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엄청 수월해진 일상이다. 아이들은 제법 커서 스스로의 일들은 책임지고 알아서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아이 키우면서 직장 생활하는 동안 메르스와 코로나 등으로 예상치 못한 일들까지 더해져 부침이 많았지만, 바깥세상도 나와보니 살만했다. 그때 시작이 아니었으면 고민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억지로라도 했던 일들이 마중물이 되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유명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평범한 엄마가 되었지만 누군가에게 평범한 엄마도 꿈의 대상일 수도 있다고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