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토리

일기 08. 온전한 김밥과 옆구리 터진 김밥

by 책계일주


열두 살 겨울이는 소풍 가기 며칠 전부터 엄청 설레어했다.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하고, 오이를 썰어 굵은소금에 절이고, 당근을 채 썰어 볶고, 계란을 풀어 계란지단을 두껍게 부쳐내고, 깻잎은 꼭지를 잘라 씻어 체에 밭쳐놓고, 햄과 오양맛살을 결대로 잘라 볶아놓고, 참치캔을 따서 기름을 쪽 빼고 마요네즈와 맛소금 통깨 넣고 비벼놓고, 취사가 완료된 밥에 맛소금과 참기름 통깨를 넣고 잘 섞이게 여러 번 주걱으로 휘저어서 김밥 재료 준비를 했다. 겨울이는 포도와 방울토마토를 씻어 통에 담고, 칸쵸와 씨리얼 과자랑 파워에이드 음료수는 가방에 담았다. 김밥을 마는데 시간도 조급하고 예쁘게 잘 싸려고 하다 보니 김밥 옆구리가 터졌다. 터진 김밥은 썰어서 싱크대 접시 위에 올려놓았더니 아이들이 등교 준비를 하며 오다가다 먹고 나도 증거를 인멸하듯 얼른 입속에 넣었다. 온전히 잘 썰린 김밥만 도시락에 담아 주었다.



온전함으로 편집된 김밥





사는 것도 똑같다. 옆구리 터진 김밥 같은 감정이나 일상은 대체로 내가 삼켜버리고, 제법 잘 썰린 김밥 같은 감정이나 일상은 글쓰기라는 포장 용기에 담아 온전하게 사는 것처럼 포장하고 편집한다. 블로그에 처음 일기를 쓸 때는 옆구리 터진 김밥 같은 너덜너덜한 온갖 감정을 다 쏟아 글을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형체를 잃은 김밥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예전에 글꽃 이웃님이 본인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나니 온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나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제 내 안의 걱정이나 불안 같은 감정을 쏟아냈으니 다시 잘 메워줘야겠다.





핸드폰 사진첩에 지난 날짜 스토리를 우연히 확인했다. 갤럭시가 어떻게 알았는지 제법 잘 나온 사진 몇 장에 은은하고 달달한 배경음악을 넣어 스토리를 만들어줬다. 세상에.. 나보다 낫다!



✔️ tip. 삼성 갤럭시 스토리를 검색해 보니 AI가 물체를 인식해서 자동으로 스토리를 생성한다고 한다.




내가 만든 스토리는 아니지만 달달한 음악에 사진이 스쳐 지나가는데 편집되어 나오는 스토리 영상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혼자 이것저것 나도 스토리를 만들어보았다. 만들다 보니 같은 사진이어도 어떤 배경음악을 넣고, 어떤 필터를 선택하는지에 그날의 스토리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이 아프고 나서부터는 자주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왔다. 그 감정들이 친근하게 느껴져 종종 습관적으로 데리고 있을 때가 있었는데, 오늘 스토리를 만들다 보니 같은 사진이어도 배경음악과 필터에 내 기분이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어떤 하루를 보내든 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건 결국 내 책임이었다. 일상이 단조로울 땐 즐거운 배경음악을, 정신없을 땐 여유로운 배경음악을, 지치고 만사가 귀찮을 땐 활기찬 배경음악을 선택해 봐야겠다. 그에 앞서 마음에 긍정과 감사의 필터를 끼고 말이다.





※ 스토리 만들어보기


2023.5.23.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