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온 그림자, 알레르기

일기 01. 회피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by 책계일주



어느 날, 문득 내가 이러다가 덜컥 소리 없이 죽을 것만 같았다. 얼굴에 있는 모든 기관들이 부어오르며 기도가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거울로 비춰 본 나는 너무 무서웠다. 눈이며 입술, 얼굴이 평소보다 두 세배는 더 부어 있었다.


처음 내가 그 그림자를 마주했을 때까지만 해도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그림자처럼 달라붙어서는 끈질기게 괴롭혔다. 이 그림자가 나를 기록해야겠다는 계기가 되어 메모장이나 탁상달력, 다이어리, 노트 등에 생각나는 대로 적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자 이런 기억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음을 깨달았다.



마흔이 넘도록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기억하고 싶었지만 자꾸 사라져 버리는 나의 기억 조각들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2021.7.27. 기록의 시작. 꿈꾸는 일기










나의 그림자는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따라다니다가 불현듯 나타난다. 어제도 그 약을 먹기 전에 처음 먹어보는 약이라 걱정이 됐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후 3시에 약을 먹고 졸음이 쏟아져서 자고 일어나니 오후 5시였다. 얼굴이 뻑뻑한 느낌이 들어 거울 앞에 서니, 얼굴이며 입술이 퉁퉁 붓고 왼쪽 눈은 충혈되었으며 숨 쉬는 게 점점 힘들다는 게 느껴졌다. 기도까지 붓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서둘러서 알레르기를 일으킨 그 약봉지를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 핸드폰을 챙겼다. 집 앞에 있는 병원에 가서 빨리 덱사 주사를 맞을 요량이었다. 내가 병원에 들어서자 직원 한 분이 이 분은 빨리 진료를 봐드려야겠다며 접수를 했다. 아마 마스크를 써도 퉁퉁 붓고 충혈된 눈을 보았을 것이다. 다행히 다른 대기 환자도 없어서 바로 진료를 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여기서는 덱사 주사를 놔주는 거 말고는 다른 처치가 없다면서 진료 의뢰서를 써줄 테니 응급실로 바로 가라고 하셨다.



자꾸 카카오 택시가 취소되는 바람에 20분이나 지체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타고 ㅇㅇㅇ병원 응급실 앞에서 내렸다. 갑자기 얼마 전에 읽은 '만약은 없다' 책에서 읽은 응급실 장면이 떠올랐다. 늘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에 갔지만 오늘따라 응급실이라는 문 앞에서 나는 두려워졌다.



접수처에 방문 기록을 남기고 진료 의뢰서와 함께 접수를 했다. 예진실 의사 선생님은 이것저것 물어보시고는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빈 침대에 누웠다. 눈은 더 부어오르는 듯했고, 호흡곤란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침대는 90도로 세우고 내 몸에 이것저것 걸쳐지기 시작했다. 왼쪽 귀에 뭔지 모를 집게를 달았고 왼쪽 손목에서는 동맥혈관을 잡아서 채혈을 하고, 입에는 약을 뿌린 호스 같은 걸 물고 호흡기 치료를 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연기가 목구멍으로 들어가 약 냄새가 쓰게 느껴졌다. 나는 목구멍이 쓴 데 괜찮은 건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으니 계속하고 있으라고 했다.



호흡기 치료가 끝나자 마스크를 끼우고 산소 공급을 해주신다고 했다. 직각으로 세워진 침대에 앉아 있으니 허리도 아프고, 허둥지둥 나서느라 반바지 차림에 맨발로 누워 있자니 에어컨 바람이 너무 추웠다. 내 맞은편 침대, 그 옆 침대, 또 그 옆 침대 모두 꽉 차 있었다. 다행히 책 속 응급실 아비규환은 펼쳐지지 않았다. 조용히 선생님들의 오더 지시 내용이나 기계음 소리, 보호자 목소리, 환자들이 처치받고 오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제 오른팔에는 수액을 맞기 시작했다. 굵은 바늘이라 많이 아플 거라 이야기했다. 난 정신이 없어서 감각을 느낄 겨를이 없었는지, 조금 욱신거리긴 했지만 몸과 영혼이 분리된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이 아프진 않았다. 오른쪽 팔에는 수액을 맞고 있었고, 곧 사방으로 커튼을 치고 심전도 검사를 했다. 응급실 처치를 받는 동안 처음 문 앞에 섰을 때와는 달리 두려움보다 심리적 안정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호흡곤란이 점자 줄어들고 있었고, 알레르기 증상을 감소시켜 준다는 주사를 맞고 있으니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경계로 돌아온 듯했다.



문득, 집을 나서기 전 아이들에게 부탁했던 일 들이 생각났다. 이제야 정신이 조금 들고 있었다. 수액을 단 채로 화장실에 혼자서 두 번이나 다녀왔다. 거울을 보니 충혈된 눈도 가라앉고 눈 부기도 처음보다는 빠졌다. 침대에서 수액을 맞고 있는데 그날 응급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오셨다. '호흡은 좀 어떠세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응급실을 들어갈 때의 두려움은 조금 내려놓고 아까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대답했다.



"피검사 결과도 정상이고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어서 이제 집으로 가셔도 됩니다. 알레르기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알레르기 반응이 자주 찾아와서 힘든 데요. 혹시 외래 진료를 받으면 알레르기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불안한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회피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알레르기 일으키는 약물을 잘 기억하셨다가 피하는 방법뿐입니다. 접촉을 피하는 방법이오."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조금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바로 대답을 했지만, 마음은 많이 머뭇거렸다.



응급실에서 나오는 길은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넣은 듯이 무거웠다. 검은 그림자가 몸에 달라붙은 것처럼 두려웠다.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경계로 나온 길거리는 여름인데도 밤공기라 그런지 시원하고 상쾌했다.



2021.8.13. 꿈꾸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