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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계일주 Oct 04. 2023

발가락이 닮았다

일상 12. 구멍 난 양말과 구멍 난 운동화


나는 아빠 발가락을 닮았다.


아빠 발가락을 닮은 나의 발은 칼발이다. 엄지발가락이 유난히 크다. 또,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위로 향해 있어서 아래로 눌러도 다시 엄지발톱이 쏙 올라온다. 다른 발가락들은 완두콩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다. 꼭 요렇게 생겼다.




빨래를 걷어 가족들의 양말을 개다 보면 엄지발가락 쪽 부분이 구멍이 나서 실로 기워져 있는 게 분명히 내 양말이었다. 나만 또 운동 신경도 없는 아빠의 발가락을 닮았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의상실을 하고 계셨다. 구멍 난 양말을 순식간에 꿰매어 놓으시는 건 일도 아니었다.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실로 꿰맨 양말이 창피해서 신기 싫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다고 매번 새양말을 사줄 수 없으니 왼쪽 오른쪽 양말을 번갈아가며 신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발가락 압력이 골고루 분산된 탓인지 구멍 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나의 발가락은 여전하다. 아빠 발가락을 닮았다. 


몇 달 전이었다. 아침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프고. 소변이 잦아졌다. 퇴근 후 산부인과에 다. 진료를 받기 위해 신발 벗고 산부인과 의자에 누웠는데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빼꼼히 보였다. 아침에 신을 때는 구멍이 없었는데 낭패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아니고, 사지 멀쩡한, 젊다면 젊은 나이 사십 줄에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니다니..'라고 생각할까 봐 혼자 낯이 뜨거워졌다. 어서 진찰이 끝나기를.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졌다.






요즘 나는 가볍고 편한 메시 소재의 운동화를 신는데, 그마저도 엄지발가락에 구멍이 났다. 우리 아이들이 아무리 험하게 신어도 구멍 안 나는 운동화가 나의 엄지발가락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운동화가 구멍 난 건 벌써 두 번째다. 운동화는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신을 수도 없다. 야속하다. 아빠를 닮은 발가락이 돌아가신 아빠를 자꾸 생각나게 한다. 구멍 난 양말과 구멍 난 운동화는 창피하기도 하고 마음이 구멍 난 것처럼 시리기도 하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발가락을 확인했다. 혹시 나의 발가락을 닮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다들 아빠 발가락을 닮았다.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우리 엄마처럼 구멍 난 양말을 꿰매주지 않아도 되었다. 



2021.11.11  꿈꾸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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