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해방의 글쓰기

일기 03. 나는 자주 체하는 아이

by 책계일주





어릴 적에 체하면 약국에 가서 가스활명수를 사 먹고 토하기도 하고, 엄마가 등을 두드려준 후 바늘로 엄지손가락 손톱 밑을 찔러 피가 나오게 하는 민간요법인 손을 따고 나면 괜찮아지곤 했다. 양쪽 엄지손톱 아래로 꾹 누른 바늘 자국에 시커먼 피가 방울로 나오면 찔린 곳은 눈물이 쏙 나오게 아팠지만, 가슴 밑이 서늘해지면서 체기가 내려가곤 했다.



나는 자주 체하는 아이였는데, 빨리 먹고 싶은 마음과 달리 그만큼 소화가 잘 안 되는 아이였다. 커서 알았지만 소음인 체질인 것 같았다. 한 번도 마른 적 없는 체형 빼고는 대체로 소음인과 비슷했다. 아빠는 음식을 꼭꼭 백 번씩 씹고 삼키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마음이 급해 몇 번 씹지도 않고 음식을 꿀떡꿀떡 삼키곤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는 빨리 먹는 식습관이 더 잦아졌다. 틈날 때 끼니를 챙겨 먹지 않으면 그새 아기가 깨서 보채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고 다시 재우고 또 다른 아이를 챙겨줘야 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대충 국에 밥을 말아 싱크대 한쪽에 서서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늘어났다.



체했을 때 증상이 끙끙 앓아눕는 정도로 심해진 건 넷째 겨울이를 낳고 돌이 지난 후였다. 체한 증상이 가라앉지 않아 일상생활하기가 힘들어져서 큰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 검사도 하고 약을 먹고 했는데 검사할 때마다 별다른 이상이 없고 소화제 처방약뿐이었다.



약을 먹어도 체한 느낌이 지속되어서 한의원에 갔는데, 타고나길 비위가 약한 체질이라 과식하거나 신경 쓰면 담적이 쌓여서 잘 체하는 체질이라고 했다. 침을 여기저기 맞고, 배에 뜸을 뜨고, 가루약을 주시면서 뜨거운 물에 타서 커피 마시듯이 복용하라고 했다. 한동안은 체할 때마다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호전되었다. 그럼에도 꼼짝없이 2~3일은 굶어야 체기가 내려갔고, 두통과 어지러움, 목과 어깨가 뻣뻣한 증상은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담적'이란 한의학에서 오랫동안 위장이 좋지 않아서 위에 담이 쌓여서 가슴에 뭉쳐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럽다고 한다. 두통, 어지럼증, 어깨결림 등은 위에 담이 쌓여서 혈액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어깨와 목, 머리로 올라가는 혈류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머리가 어지럽고 목과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고개를 들고 있기 힘든 증상은 나를 괴롭게 했다.






오랜만에 친정에 가서 회와 멍게, 소라, 낙지 등 각종 해산물에 매운탕을 먹은 후 잘 때는 거실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콧물과 코막힘이 시작되었고 몸살 증상이 있어 집으로 왔다.



최근에는 심하게 체한 적이 없었는데, 콧물과 코막힘, 몸살, 머리 아픈 증상이 있어서 코로나이거나 감기몸살에 걸린 줄 알았다. 코로나 검사는 음성이었고 몸이 바닥으로 꺼지고 영혼이 가출하는 증상이 며칠 지속되었다. 식은땀과 오한이 나고, 두들겨 맞은 듯한 몸살을 앓고 나니 그제야 체기가 느껴졌다. 결국 체한 것이었다. 콧물과 코막힘 증상은 부수적일 뿐 체한 것이 주였는데, 일상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담적이 쌓이지 않게 그때그때 비워야 하는데, 자꾸 쌓이게 하는 습관이 문제다. 체할 때마다 다짐한다. 소화 잘 되는 음식을 적게 천천히 먹고, 괜한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매일 걸어야겠다고 말이다.



한동안 담적병에서 해방되어서 잊고 지냈는데 그 틈을 비집고 내게로 왔다. 끙끙 앓았던 지난 며칠을 보내는 동안 우울하고 나약해졌는데, 글을 쓰면서 아픈 일상에서 해방되는 자기 글쓰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2.6.6. 꿈꾸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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