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운동화 신은 나
일기 04. 걸어야 산다는 마음으로
지난주 급체와 몸살 기운으로 골골하던 나는 영혼이 가출해 버린 절박한 상태였다. 몸이 바닥으로 꺼지는 경험을 할 때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머리로 하는 생각마저 하기 힘들다. 그런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마흔두 살쯤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때는. 심장이 밖으로 나와있는 느낌이고, 바닥에 누워있는 데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고, 앉아있어도 앉아있지 않은 듯한 안절부절못하는 몸과 마음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었다.
나는 '참고, 누르고, 담고'가 당연한 사람이었다. K-장녀로 자랐다. 그렇게 당연했던 '나'를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만 받아들인 나였다.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란 내게 없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당연히 해야 한다고 느끼던 것들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사회적인 틀이 통제처럼 느껴지고, 당연히 받아들였던 일들을 차차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갔다. 처음 거절을 했을 때는 거절을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오은영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거나 큰일이 아니라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거절 이후 상대방의 마음은 본인 몫이 아니에요. 상대방의 몫입니다.' 그 말을 기억해 냈다.
마음 치유하는 강연을 찾아보고, 심리학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그때부터였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는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작아지게 만들어주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게 된 또 하나는 '운동화 신은 나'였다.
친구에게 요즘 마음이 이상하다며 고민을 털어놓자 그럴 때 걷기 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며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을 추천해 줬다. 그 책을 읽은 후, 매일 저녁을 먹고 나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냥 걸었다. 어디 멀리 간 것도 아니고 다시 돌아오기 힘들까 봐 집 주변을 1시간 정도를 걸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바깥바람을 쐬고, 주변 풍경을 보고,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이 첫 시작 단추였다.
내 몸과 마음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는데, 운동화를 신고,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나는 내 두 다리를 이용해 걷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불안해서 그런 건지, 걷기 운동을 해서 빨라졌기 때문인지, 헷갈려지면서 두근거리는 두려움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운동화에 또 구멍이 났다. 메시 소재의 러닝화인데, 이건 운동화 탓도 아니고, 많이 걸은 탓도 아니고, 그저 내 엄지발가락 탓이다. 유난히 큰 나의 엄지발가락은 위로 솟아있어서 양말도 자꾸 구멍 내더니, 이젠 운동화도 자꾸 구멍을 낸다. 외출용으로 새 운동화를 사놓고는 또 구멍이 날까 봐, 걷기 운동을 할 때나 산에 갈 때는 그냥 구멍 뚫린 운동화를 신고 간다.
매일 나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일이, 단순히 운동화 신고 집 밖을 나와 걷는 일이었지만 몸이 아프면 그것조차 힘든 일이라는 걸 알기에 감사한 한 주였다.
한낮에는 반팔을 입는 더운 6월 초였지만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 걷는 일이 숙제가 아니라 하루의 보상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온갖 소음과 쏟아지는 정보에 시달리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출 필요 없이 내가 낼 수 있는 만큼의 속도로 걷다 보면 어느덧 1시간이 지나있었다.
내 속도만큼만 걷는 나의 일상이 무채색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 주에도 특별한 일도 없을 것이고 잔잔할 테지만, 다소 행복해지면 좋겠다.
2022.6.13. 꿈꾸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