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몰랐다. 심장이 집 나간 느낌을.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이 낳고 집 안에서 혼자 있으니 우울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그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아직도 내 손이 필요한 아이들의 엄마라는 책임감이라는 무게에 맞물려 걱정과 염려가 커지자 불안이 찾아왔다. 무서운 손님이다.
앉아있어도 누워있어도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팔다리가 말을 안 들었다. 초조해졌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닐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래서 베란다 창문을 열고 걸어 나가는구나. 숨이 안 쉬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저녁을 지어 놓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집으로 돌아왔다.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쓰고 걷고, 추운 날엔 마스크를 쓰고 두꺼운 점퍼를 입고 걸었다.
어느 순간 한참이나 울렁거리던 속이 조금씩 가라앉더니 심장이 돌아왔다. 아마 마흔두 살 심장도 두 번째 사춘기였나 보다. 나를 찾으러 뇌도, 심장도, 팔다리도, 구멍 난 내 운동화도 그렇게 밤길을 쏘다녔나 보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바로 운동화를 신고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일기 쓰기였다. 걷기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싱크대에 산더미로 쌓인 설거지를 폭풍처럼 하고, 티브이를 보며 산더미로 쌓인 빨래를 개고, 밤늦은 시간에는 거실에 이불을 깔고 엎드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스스로 하는 일이었다. 내 인생 내가 산다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주어진 역할에 통제당하고 있다가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결정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일기를 쓰면서 내 행동과 감정을 제어할 수 있고, 다음의 계획을 세우고, 의지를 다질 수 있다. 그 계획이 작심삼일이어도. 삼일은 성공이다. 때로 내 생각대로 밀어붙이다가 틀릴 때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또. 멈춰 서서 집중해 들여다봐야 할 일이 있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이득이라는 일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음이 빈약할 때는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힘들어 한쪽으로 밀어놓고 있던 적도 있고, 그르친 일을 무조건 내 탓이오 하며 후회하고 자책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회피하던 감정이나 놓여있는 상황을 눈에 보이게 글로 쓰면 쓸만한 건 저장하고 비울 건 비워지고 정리가 된다. 점차 숨이 쉬어진다. 심장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11월은 현생을 사느라 바빴다. 글쓰기에 소홀해지고 춥다는 핑계로 운동도 잘 안 했더니 심장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가슴 밑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안다. 또, 그 유명한, 인생을 결정짓는데 중요하다는, 티브이에도 연일 보도되는, 수능 시험이 있었다. 우리 집에도 그 유명한 수험생이 살았다. 여전히 집은 시끄러웠으나 다만 남편의 독감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김장마저 끝내자 나는 마치 올해의 할 일을 다 끝낸 듯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심장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