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계일주 Mar 06. 2024

봄이의 독립

기록 11.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


2024. 2. 28. 수요일 



보통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마다 편의점 커피를 사가지고 출근을 한다. 지난 3년 동안 첫째 열아홉 살 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출근했다. 1월부터는 혼자 다니고 있다. 다음 주는 아이들 모두 개학이라 분주한 아침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올해는 고2 여름이와 아침을 동행할 예정이다. 봄이가 없어서 허전할 것이다. 



책을 틈틈이 읽는데도 막상 블로그에 독서 기록을 하려고 하면 갑자기 있던 시간이 없어진다. 시간 비용뿐 아니라 나의 뇌와 손가락 노동비용이 든다는 걸 아는 것이다. 가끔은 손목도 욱신욱신 아프다.



벌써 2월이 다 갔다. 내일은 봄이의 대학교 입학식이다. 오늘 하루 먼저 혼자 숙소에 갔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전철 타고 십분 남짓 걸어서 학교 근처 숙소에 갔다. 주말마다 내려온다고 했는데, 오늘 짐 두 보따리 들고 가더니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주 내려오기는 힘들 것 같다고. 






지난 일요일엔 남편과 함께 봄이가 지낼 숙소에 짐을 가져다주었다. 손바닥만 한 고시 룸에 작은 베이지색 암막 커튼을 달고, 침대에 베이지색 이불과 패드를 깔고, 티셔츠와 바지는 접어서 사다리 선반에 올려두고, 잠바는 옷걸이에 걸었다. 시계, 거울, 손톱깎이와 비상약 상자, 빗, 드라이기는 책상 선반에 정리했다. 샴푸, 린스, 보디워시, 치약, 칫솔, 비누, 폼클렌징은 바구니에 넣어 샤워룸 바닥에 두었다.



어느 정도 짐을 놓은 방을 둘러보았다. 왼쪽 벽 옆에 세로로 놓인 하얀 책상과 하얀 의자, 그 옆에 작은 냉장고. 샤워룸. 오른쪽 벽 옆에는 1인용 침대, 그 아래 5층 선반. 세로로 넣은 책상 앞 의자를 빼고 침대 가로길이를 합치면 대략 방의 가로 폭이 완성된다. 빙 둘러볼 것도 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방이었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외벽으로 난 작은 창문이 있어 바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커튼을 달아주는 남편의 등에 한숨이 새어 나오더니 근심 섞인 말을 했고, 나는 봄이에게 애써 혼자 살아서 좋겠다는 진심을 전했다. 



고시 룸은 큰 네모 안에 작은 네모가 있는 구조 같았다. 외벽 창문이 있는 방들이 네모난 둘레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고, 가운데 공간에 있는 방들은 빙 둘러 등을 기대고 복도를 향해 내벽 창문과 문이 있었다. 봄이를 덩그러니 두고 올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처음 가보는 동네 버스 정류장 앞, 고시 룸, 하얀 벽에 여러 개의 작은 초록 페인트가 칠해진 문들이 있는 곳. 그곳에서 봄이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 스무 해 동안 네가 있어서 행복했단다. 고마웠어. 우리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