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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승 Jun 16. 2021

방향이냐 거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골프에세이#3,

1장 골프에 대해 미처 몰랐던 것들

1-2 방향이냐 거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선 거리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각 클럽은 로프트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해진 평균의 비거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프로와 아마추어 등 성인표준의 신체적 조건값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거에요. 각 클럽 제조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클럽의 스펙을 정하게 되지요."


"그러면 저는 7번 아이언 기준으로 130미터정도를 보내서, 좀 비거리가 짧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제 스윙의 문제였군요?"

"네, 정확한 클럽의 스펙은 제조사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피팅샵에서 측정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조사에서 말하는 표준 비거리와 편차가 많다면 스윙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잘 치는 분들과 비교해서 너무 볼이 높게 뜨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습니다. 혹은 같은 조건에서 동반자의 볼은 그린에 잘 멈추는데, 빅터의 공은 런이 많다거나 하다면 퍼올리는 스윙을 하는 것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부분도 스윙의 개선을 통해서 차차 해결될 겁니다."


오메가 코치는 쏙쏙 내 문제를 신통하게 꿰뚫고 있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어릴적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쇼를 보는 것처럼 그에게 빨려들고 있었다. 

잠깐 딴 생각을 했는지, 오메가 코치가 질문을 했는데 못 알아들었다. 


"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공의 구질을 결정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혹시 알고 계신가요?"

"아니요. 뭘까요. 음...스윙의 궤적 아닌가요?"

"네, 일부만 맞습니다. 볼은 구체이므로 다양한 스핀의 요소를 갖습니다. 즉, 클럽의 로프트와 다운스윙의 궤적 등 볼이 스핀을 어떻게 가지고 출발하는지 요소는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볼의 비행의 출발하는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는 단 한가지 입니다. 이게 뭘까요?"

"음...스윙의 궤적?"


나는 알아들을 듯, 못 알아들을 듯 중간쯤에 와 있었다. 좀 적으면서 수업을 들어야 하나, 또 조바심이 났다. 


"정답은 바로 클럽페이스의 방향입니다. 즉, 정지되어 있는 볼에 클럽페이스가 날아와서 강하게 부딪히게 되면 공은 일시적으로 압축되어 있다가 반발력에 의해 비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드라이버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공이 클럽페이스에 머무는 찰나의 순간이 1만분의 5초입니다. 아무리 짧은 순간이지만, 클럽은 멈추어 있을까요? 아닙니다. 클럽페이스와 볼은 붙은 채로 약 2.5센티미터 함께 이동하는 것이에요. 이때 클럽페이스가 닫히면 볼은 왼쪽으로, 열려 있으면 우측으로 출발하게 되는 거지요."


나는 그 짧은 순간 볼이 클럽페이스에 붙은 채로 함께 이동한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다. 이 같은 내용은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한 유튜브 영상도 있다고 하니 집에 가서 꼭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그리고 그가 차를 잠시 마시는 순간을 이용해서 우등생처럼 질문의 수준을 좀 올렸다.  


"그러면 볼에 클럽이 임팩트 직전에는 클럽이 약간 열린 상태로 맞아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잘 이해하셨군요. 그런데 그건 일부러 열어서 맞출 필요는 없어요. 올바른 스윙은 약간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핸드퍼스트 된 상태에서 임팩트를 하게 되는데 그 때 자연스럽게 약간 열린상태에서 다운블로우로 맞게 되는 거에요."


'아! 다운블로...'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난다. 타이거우즈 선수의 7번 아이언이 볼에 맞는 순간 샤프트와 지면이 이루는 각도가 약 17도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 클럽페이스는 타겟에 대해 당연히 열려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면 볼이 똑바로 출발했다가 우측으로 슬라이스가 나는 경우는 왜 그런거지요?"


나는 평소 내 구질이 늘 만족스럽지 못했다. 타겟의 왼쪽을 볼 수록 더 공은 심하게 휘었다. 일부러 클럽페이스를 약간 닫아서 치면 좀 휘는 정도가 덜하기는 했지만, 자칫 스탠스라도 좋지 않을 때면 공은 좌측으로 똑바로 날아가곤 했다. 그린의 좌측에 핀이 있고, 왼쪽에 해저드나 오비가 있는 경우에는 심장이 쿵쾅댔다. 더운 햇살 밑,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종종 현기증을 느꼈고 공은 거짓말처럼 내 불안한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다. 뻥 뚫린 하늘과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잔디 위에서는 유독 나의 표정과 불안함이 먹물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반드시 이런 상황에서, 잭이, 내가 잘 보이는 대각선에 서서 날 흐믓하게 쳐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어느 순간, 아니 꼭 '빅터, 너의 심장은 바로 여기야' 하는 것처럼 요란하게 내장에 알람이 울리는 순간에는 잭, 그 녀석이 꼭 날 관찰하고 있었다. 어떤 현상에 늘 가벼운 전조가 있었다면, 그리고 이것이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안다. 이 빌어먹을 예행이 꼭 망할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런 순간, 잭의 흐뭇한 미소에 몸서리를 앓는다. 잭의 미소 뒤에는 항상 미스샷이 있었다. 


"아까, 결과에서 과정을 추론하는 방법을 사용하시면 이해가 빠를겁니다. 골프란 결국 진자의 운동과 같습니다. 관절이 바로 고정점이 되는 것이고, 관절에 연결된 팔은 바로 진자의 줄입니다. 클럽헤드는 진자 끝에 달린 추처럼 원모양을 그리며 스윙을 이루게 되지요. 문제는 관절, 즉 고정점이 움직인다는 것이 골프를 어렵게 해요. 골프볼 테스트에 쓰는 스윙머신처럼 관절이 고정되어 있을 수 없는 것이 우리 몸이거든요. 더군다나 고정점이 두 개라면요? 더 어렵겠지요?"


"혹시, 고정점이 두 개라는 것은 어깨와 손목을 말하나요?"

"정확합니다. 빅터는 잘 이해하고 계시는군요. 허리를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게 되면 가장 크게 움직이는 관절은 바로 어깨와 손목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개의 변수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움직임이 많은 변수를 통제해야 합니다. 즉, 어깨와 손목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스윙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투어프로들의 100미터 이내의 피치샷을 슬로우모션으로 본 적이 있으시지요?"

"네, 많이 봤습니다. 하체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어깨를 중심으로 마치 시계추가 올라갔다가 그대로 내려오는 것 같았어요."

"맞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일관성 있는 신체의 통제입니다. 이를 위해 추천하고 싶은 스윙이 따로 있는데, 나중에 차차 말씀해 드릴께요.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첫날이니까 이정도로만 말씀 드릴께요. 다음 수업은 목요일이 어떤가요?"

"네네, 좋습니다. 목요일, 같은 시간에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겸손해져 있었다.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매우 낯설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무게감을 가지고 내 머리속을 울리고 있었다. 마음속에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보통 이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아니, 내가 지금껏 만나왔던 사람들 중에는 그랬다. 스피치를 좀 잘하고 싶어서 활동했던 강사협회에서 만났던 찰스에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 두살 많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의 눈빛은 인자하고 부드러웠다. 그가 항상 날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특히 좋았다. 내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준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난 살짝 몸이 뜨는 것처럼 좋아졌다. 발걸음도 가볍다. 남아있는 시간이 좀 있어서 마저 연습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불과 5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기분이 우울해졌다. 내 스윙은 정말, 아직은 형편 없었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이 불쌍한 인간이라니...' 뒷사람이 아까부터 내 뒤에 캐디백을 내려 놓고 내 스윙을 관찰하고 있었다. 관찰의 객체가 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목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짐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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