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오늘은 2021년 5월 10일
인생의 절반쯤 살아온 오늘 금주일기를 시작합니다.
원래 술을 끊기로 한 건 거창한 이유가 아닙니다. 3일 뒤, 목요일에 라이벌 형님들과 골프를 치기로 했는데 몸의 컨디션을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워낙 몸치라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고, 축구나 농구처럼 타인과 몸으로 부딪혀 가며 승부를 겨루는 건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마흔이 되던 해에 나는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없으면 안 되는 동반자가 되어버린 골프 이야기는 차차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술을 끊기로 했기 때문에 어제 기념으로 한 잔 했습니다. 금주를 기념해서 술을 한 잔 먹는다? 참 웃기는 일이지요? 술꾼은 술을 먹을 핑계를 꼭 찾는다고 합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축배를, 기분이 나쁘면 나쁜대로 위로주를. 여러분도 혹시 그렇지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덕분에 어제의 술기운이 아직 혈관 속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간도 좀 피곤하다고 제 귀에 속삭이는 것 같고, 자꾸 하품이 나옵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일찍 자야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D+2] 오늘은 2021년 5월 11일, 화요일입니다.
아직까지는 별로 술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어제 아침 일입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느라 테라스로 나가다가 발에 뭐가 걸렸습니다. 챙 하고 병끼리 부딪히는 단단하고 맑은 유리 소리가 납니다. 소주병을 모아 묶어 놓은 비닐봉지입니다.
술을 끊기로 결심을 했는데, 어제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냉장고 안에 소주 두 병과 막걸리 한 병이 눈에 보였습니다.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이 술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미련 없이 뚜껑을 따서 부엌 싱크대에 쏟아 버렸습니다. 막걸리도 휘휘 흔들어서 잘 버렸습니다.
남은 건 그간 먹고 남은 소주병 25병, 한 달이면 쌓이는 양입니다. 부끄럽지만 그간 거의 매일 마셨음을 고백합니다.
함께 먹은 안주로 오장육부를 힘들게 해서 내 몸에게 미안합니다.
이제부터 밤에는 몸도 좀 쉴 수 있도록 되어서 다행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D+3] 2021년 5월 12일 수요일입니다.
오늘은 기다려온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하는 날입니다. 나는 평소 술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물론 외부 영화관에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만 집에서 혼자 하던 못난 습관입니다.
이제는 술을 끊었으니 영화를 무슨 재미로 볼까 벌써부터 마음이, 아니 뇌가 공허합니다.
술과 연결되었고, 사랑했던 모든 것과도 슬슬 이별을 해야겠지요.
서운하지만 괜찮습니다. 난 강해지고 있거든요.
오늘 밤도 안녕히~
[D+4] 5월 13일
오늘 드디어 라이벌 형님들과 결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멀리 서해에 있는 섬까지 가느라 오래 걸렸습니다.
오늘 매우 안타깝게도 무승부가 되었습니다. 팀별 베스트 스코어 기준 홀별 업다운 매치 방식으로 승부를 겨루었는데, 마지막 상대팀 선수가 꽤 먼 거리 퍼팅을 성공시키면서 비기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퍼팅이 들어가면 우리 팀이 지는 줄 알고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날이 무척 덥고 바다 근처라 바람이 몹시 불어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습했으나, 술을 끊은 지 며칠 지나서인지 체력은 버틸만했습니다.
다행입니다. 건강하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운동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더 오래 행복을 즐기기 위해 지금 마음먹은 대로 꾸준하게 금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다음 결전 일자와 승부 방식에 대해 왁자지껄 말들이 많은 밤이었습니다.
술 없이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직 고역입니다.
금주일기를 쓰면서 더 의지를 다잡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D+5] 오늘은 14일 금요일입니다.
불금이라 하여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던 오랜 습관 때문인지 전화기에 손이 여러 번 왔다 갔다, 제 마음도 뒤숭숭합니다.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가야겠습니다. 어물쩍 있다가는 걸려오는 전화를 거절하지 못해 못난 몸뚱이를 술독 한가운데 옮겨 놓을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파이팅입니다.
[D+6] 오늘은 5월 15일 토요일입니다.
금주 후 처음 맞는 토요일입니다. 예전에는 불금을 놓치면 꼭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지요? 온 나라가 술을 먹는 공식 축제일이 됩니다. 다음 날 늦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늦도록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고, 영화를 봅니다. 당연히 다음날은 점심때가 지나 겨우 일어나서 해장을 할 만한 것이 뭐가 없나 냉장고를 뒤지기도 하고, 상태가 더 안 좋으면 중국집에 짬뽕을 주문합니다.
속이 얼얼해지고 메쓱거립니다. 저는 이 경우 콜라를 즐겨 마셨습니다. 위장, 소장, 대장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난리가 나고 저를 꽤나 원망했을 겁니다. 잠도 안 자고 알코올에 기름진 안주를 잔뜩 배속에 넣어서 밤새 고생을 시키더니 쉴만하니까 새빨갛고 짜고 매운 국물을 들이붓고, 강산성의 콜라까지 잇달아 넣습니다.
내가 그들 입장이라도 참 힘들고 화가 날 법합니다. 일을 안 하고 파업을 하고 싶었겠지요. 제대로 일을 못하니 소화가 안된 음식물이 소장으로, 다시 대장으로 지나면서 수분 흡수가 안되어 설사가 나는 건 당연합니다.
자, 이제 나는 달라집니다.
지켜봐 주세요. 고마워요
[D+7] 오늘은 5월 16일 일요일입니다.
오늘은 파3 홀만 9개를 모아 놓은 작은 규모의 골프장에서 예선 시합이 있는 날입니다. 최근 네이버 동호회에 가입했는데 집이 가까운 남양주 지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 시작했는데도 5월 햇살이 따갑습니다. 최대 70미터를 보내면 온그린이 되는 짧은 홀이지만 9개 홀 중에 5개 홀이 중간에 일부러 끊어가도록 시합 룰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20미터부터 50미터까지 어프로치를 해야 하는 까다로운 상황이 연출됩니다.
금주를 한 덕분인지 9개 홀을 두 번 반복하는 동안 체력적으로는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더 좋았던 점은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 나의 뜻대로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짧게 홀컵에 접근시키는 어프로치의 경우에는 퍼팅과 마찬가지로 그린의 경사를 세심하게 읽고 힘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이 경우 집중력이 흩어지면 간혹 거리나 방향에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늘은 아주 마음먹은 대로 공이 잘 갔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덕분에 전반, 후반 각각 7개 오버로 남양주 지부에서 2등을 했습니다.
처음 간 골프장에서 많은 선배님들을 뒤로하고 2등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모두 금주를 한 덕분이라 믿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기쁜 하루였습니다.
몸의 변화가 점점 느껴집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D+8] 오늘은 5월 17일 월요일입니다.
전국에 있는 USGTF(US Golf Teachers Federation) 티칭프로들이 모여서 시합을 하는 날입니다. 지역별로 수도권, 중부, 남부지방 3개의 골프장에서 1년 중 각 3번의 예선을 거쳐 수도권은 35명, 중부는 15명, 남부는 20명까지 결선에 진출하는 큰 경기입니다.
작년에는 결선에서 전국 11위를 했습니다. 어느 파 4 홀에서 더블파를 하는 바람에 톱텐은 놓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나는 골프를 40세에 시작을 해서 올해 8년 차입니다. 2019년에 실력이 좋아지면서 9월 24일에 화이트 티 기준 2개 오버로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를 갱신했습니다. 자신감이 붙어 티칭프로 라이선스를 따기로 결심하고 알아보니 USGTF라는 라이선스 실기시험이 10월 25일에 남아 있었습니다.
한 달간 테스트 골프장이었던 포천힐스 CC를 포함해서 10번의 라운딩을 해서 부족한 부분을 많이 보완했습니다. 40대의 경우 79개까지 실기시험 합격이었는데 마지막 파 5 홀에서 극적인 버디를 하면서 겨우 79개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40대 아재가 처음 실기시험을 보아서 합격이라니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아마추어들이 하는 것처럼 컨시드가 없다 보니 그린에 볼을 잘 올려도 처음 퍼팅부터 매우 떨렸습니다. 땡그랑 하고 홀컵에 넣어야만 홀을 마칠 수 있었으니 그 긴장감은 정말 대단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골프를 하신다면 꼭 도전을 해 보기를 권합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골프라는 운동은 특히나 구체적인 목표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향한 도전 과정에서 얻는 것과, 이루고 나서도 좋은 점이 무척 많습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D+8] 오늘은 5월 17일 월요일 밤입니다.
오늘 말씀드린 대로 시합을 다녀왔습니다. 비바람과 안개가 방해를 해서 무척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예선 통과는 했으나 스코어는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블루라고 하는 일반적으로 아마추어가 사용하는 화이트 티박스보다 더 뒤에서 시합을 했습니다. 그립은 미끄럽고 티 그라운드 잔디 상태도 좋지 못한 등 여러 가지 변명거리가 생깁니다.
부디 술을 끊는 이 여정은 변명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D+9] 5월 18일 화요일입니다.
골프를 다녀온 날은 원래 술을 마시고 푹 잠이 들면 피곤이 풀린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이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제 무척 힘들었는데 술 없이 일찍 잠을 잤더니 오늘 아침 몸이 가볍고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10년간이나 오랫동안 사용하는 수면 앱이 있습니다. 잠을 자기 전에 실행하고 머리맡에 놓아두면 몸이 뒤척이는 움직임을 진동으로 감지하여 숙면을 취하고 있는지 여부를 기록해 주는 앱입니다.
최근에는 사운드 분석 기능까지 업그레이드가 되어 뒤척임 뿐만 아니라 코골이, 잠꼬대 등 잠을 자면서 일어나는 모든 생리적 활동을 기록하는 똑똑한 앱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요소를 합하여 수면의 품질을 수치화해서 보여 주는데 나의 10년간 수면품질은 60%, 대한민국은 66%, 쿠웨이트는 65%, 네덜란드 국민들은 81%로 최고 품질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수면품질과 관련 있는 요소들은 걸음걸이, 총 수면시간, 취침 및 기상 등 규칙적인 수면 패턴, 코골이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이란 결국 잘 먹고, 잘 내보내고, 잘 자는 것 딱 3가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은 우선 섭식을 잘 살펴보시고 잘못된 식습관, 불규칙한 수면 패턴, 스트레스, 운동부족이 원인이 아닌가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매일 건강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더 열심히 일기를 쓰겠습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D+10] 오늘은 5월 19일 석가탄신일입니다.
오늘 중요한 날을 보냈습니다.
지난주 비로 연기된 파3 남양주 지부 본선 경기에서 4강 경기까지 진출했으나 아쉽게도 3, 4위 전에서도 패하여 4위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오랫동안 활동을 해서 그린의 작은 경사까지 익숙한 선배들을 새내기가 이기는 건 아무래도 욕심이었습니다. 부지런히 연습해서 가을 시합에는 꼭 우승을 해보려고 합니다.
오전 일찍 시작한 경기가 16강부터 4강, 그리고 3, 4위전까지 총 9홀을 4바퀴나 돌았습니다. 고저차가 무척 높은 홀도 있어서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빴습니다.
점심을 훌쩍 넘겨서 쉬지도 못하고 여주 빅토리아 G.C까지 또 내달렸습니다. 예상 못한 지부 본선이 오늘이 바로 오래전 잡아 놓은 야간 라운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백돌이 시절 이 골프장과 엮인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날도 정확하게 2012년 6월 6일이라고 기억을 합니다.
짓궂은 지인 한 분이 이 날 라운딩을 두 개를 연속으로 잡아버렸습니다. 오전에는 아리지 C.C, 오후에는 빅토리아 G.C였는데, 백돌이 실력에 날도 더운데 힘 잔뜩 주면 쓰러지겠다 싶어서 작전을 짰습니다.
아이언 클럽을 처음부터 홀수 번호만 챙겨갔습니다. 5번, 7번, 9번 달랑 세 개와 드라이버, 웨지 두 개, 퍼터 한 개 총 7자루의 골프클럽만 백에 넣었습니다.
덕분에 한 클럽 더 잡고 힘 빼고 툭툭 쳤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의외로 그린 앞에 맞고 다 굴러서 그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더워서 퍼팅도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그냥 툭 하고 치면 턱 하고 붙는 것이 아니겠어요?
세상에나, 아리지 C.C에서는 82개를, 빅토리아 G.C에서는 77개 싱글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리지 C.C는 정규홀이었고 빅토리아 G.C는 9홀 두 바퀴를 도는 비교적 난이도가 쉬운 퍼블릭 골프장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백돌이가 갑자기 77개를 기록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일까요?
9홀 두 바퀴짜리 골프장에서 무슨 싱글패냐고 그리 사양을 해도 고집 센 한 동반자분이 기어코 기념패를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게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무려 10년이 가깝게 지나서 이제 볼 좀 친다고 하는 자신감으로 다녀온 오늘은 79개를 기록했습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백돌이가 10년 전에 77개를 기록한 골프장을 티칭프로가 79개밖에 못 치다니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헛웃음이 났습니다.
오전부터 일정이 힘든 하루였습니다.
그래도 금주를 하여 이 정도 체력이 유지되는 것에 감사합니다.
술을 끊으면 더 가치 있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요즘입니다.
당신이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