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위기가 왔습니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쉬던 중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가 엄마와 가벼운 말다툼을 합니다. 기억해보면 별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엄마한테 말대꾸를 하는 아이를 꾸짖다 보니, 그동안 내 안에 쌓아 놓았던 화에 작게 불이 붙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작은 솜에 불이 붙은 것처럼 내가 말을 할수록 점점 더 크게 타올랐습니다.
"아빠가 그동안 지켜보았는데, 넌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대로라면 큰 목소리로 화를 냈어야 했는데, 난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그러지 못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 내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배려할 만큼 여유가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번지는 불은 기어코 나를 삼켜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꿀꺽 삼키던 침이 거꾸로 식도로 넘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슴이 뻐근해졌습니다. 메스꺼움은 이내 귀를 거쳐 목 뒷덜미를 스치더니 머리칼이 바짝 곤두섰습니다.
"이 놈 새끼야, 응? 아빠가 그때... 흑흑..."
나는 말을 채 끝내지 못했습니다.
강하게만 보이던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보더니 첫째와 둘째가 따라서 울먹거립니다.
누군가의 앞에서, 그것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족 앞에서 그렇게나 서럽게 눈물이 나는 것이 좀 이상했습니다.
보통은 눈물이 마를 때쯤 감정이 정돈되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낯선 감정이었습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확 내가 나가서 죽어버린다는 몹쓸 말도 한 것 같습니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역시나 술 때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만약 술을 먹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 당시 나는 술주정이, 못난 아빠였습니다.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아빠와 남편의 자리가 모두 싫고 벅찬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