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들의 위로

by 노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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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끊겠다고 결심한 지 50일이 지났습니다.


술에 젖지 않은 나의 뇌는 막 건조기에서 나온 솜이불처럼 뽀송뽀송하고 향기가 나서 이제 주위 모든 것을 오롯이 담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스스로 건강하지 못하니 당연히 주변을 담을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왜 문을 열고 나가 그 사랑을 끌어안지 못했는지 이제는 잘 알겠습니다.


술을 그만 먹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가족들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습니다.


"패잔병처럼 그렇게 술만 먹는 걸 보니 참 한심하네요!"


"나랑 놀아준다고 했으면서, 아빠는 술주정뱅이, 거짓말쟁이!"


술은 나의 유일한 친구였고, 에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힘들고 외로운 중년을 위로하는 달콤한 음료수였습니다.


술을 끊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이 사소한 도전을 가족들은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습니다.


"아빠 파이팅!"


"벌써 일주일이 지났네요? 대단해요"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과 선후배들도 응원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비록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나눌 수는 없었지만 따뜻한 차를 마시고 운동을 같이 하면서 위로를 해주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아닌 대상에게서 위로를 받은 것도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에 으뜸은 보이차입니다.


술을 마시면서도 차를 즐기기는 했으나, 술을 끊고 나니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매일 아침 차를 내리고 조용히 마시다 보면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기운이 몸속을 슥 돌아 나오면 코로 약간의 흙냄새, 나무 냄새가 올라옵니다.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니 눈도 편해지고 조급증이 없어졌습니다.


두 번째로 위로를 해 준 것은 골프입니다.

나는 플레이어들끼리 가깝게 몸을 부대끼며 겨루는 스포츠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싫어할 정도입니다. 어릴 때 경험한 무례하고 비신사적인 몸싸움이 작렬하는 축구, 농구와 같은 구기종목은 아주 혐오스럽기까지 했습니다. 40세에 시작한 골프는 나의 까탈스러운 성격과 딱 맞는 스포츠였습니다. 술을 끊고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니 경기력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단순히 체력이 좋아서 되는 운동은 아니므로 정신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한 골프에도 도움이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 번째는 뜸과 침입니다.

현재 기준으로 1년 과정 중 4개월째 열심히 수련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우주 속의 인간과 자연이 별개가 아니라는 동양철학이 가득 담긴 침뜸의학을 배우다 보니 삶과 죽음, 그 과정에 있는 우리 인간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는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오장육부와 사지가 경락이라는 오묘한 신호체계로 연결되어 있고, 부모로부터 받은 원기를 저장하는 곳은 신장이며, 폐를 통해 받은 청기(淸氣)와 음식물을 통해 얻은 수곡정기(水谷精氣)가 합쳐져 기와 혈을 만들어냅니다. 기와 혈의 조화로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수련을 하면서 술, 담배, 약물 등이 주는 폐해를 더욱 잘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이렇게 나를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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