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이 맞닥트려야 했던 ‘IMF 사태’의 충격은 대학 졸업을 해도 찾을 수 없는 직장이었다. 부산의 경기가 송두리째 망가져 도망치듯 서울 연신네로 올라왔다. 그리고 작은 전세방을 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했다.
어떻게든 고향으로 쫓겨 내려가지 않게 버텨내야만 했던 현실 절벽의 한 곳이 바로 ‘연신내’였다.
같은 서울 공간이지만 20년 만에 찾은 ‘연신내역 2번’ 출구 앞에 서니 짠하다. ‘연서시장 달달한 막걸리 축제’를 알리는 SNS 서포터즈‘로 온 50대 아저씨, 또 다른 알바인 셈이다.
이른 아침 강원도에 가서 아들의 축구시합을 응원하고 급히 왔지만 마감시간까지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날짜에 활동해야할 서포터즈의 결원이 생겨 나에게까지 연락 왔다는 문자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연서시장‘ 축제가 만들어진다고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고향을 떠나온 연신내 청년의 마음은 요동쳤다.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연서시장은 처음 들었다. 잃어버렸던 20대의 마지막 그 시절로 돌아가 그 놓쳐버린 청춘의 한 조각을 찾고 싶었다.’
지하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에서 2번 출구를 찾아 지상으로 나왔다. 연신내역 2번 바깥 주변에는 축제라는 느낌이 없었다. 대로변 장사하시는 분께 물어서 ‘연서시장’ 건물 내부로 들어서야 비로소 먹거리 중심으로 왁자지껄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태원 참사 등 여러 안전문제 때문에 바깥 공간보다 내부 먹자골목 안에서 모두 소화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연서시장은 은평구에 있는 크고 작은 여러 전통시장 중에 지하철역과 가까워서 누구나 쉽게 찾고 즐길 수 있는 시장이다.
골목골목 우리 전통 재래시장의 정다운 모습을 갖춰 다양한 상품과 사람구경에서 활기가 넘친다. 뭐니 뭐니 해도 중앙 먹자골목이 최고의 자랑거리다. 각종 어패류와 함께 족발 및 다양한 먹거리와 소주 및 막걸리 등 술과 안주의 성찬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이번 축제의 가장 큰 메인은 연서시장의 ‘먹자골목과 막걸리’다. 교촌F&B의 ‘은하수 막걸리’ 8도와 6도의 두 제품소개가 중요 포인트다.
‘은평구, 연신내, 연서시장. 그리고 은하수 막걸리’ 모두 ‘o’이 4번 반복되다 완성된 카피 ‘우유빛 막걸리, 은하수’는 <발효공방 1991>가 100년 영양양조장의 전통과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프리미엄 전통주다.
조귀분 명사께 전수받은 감향주(甘香酒) 양조법을 현대화해 감미료나 인공적인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고품질의 쌀, 누룩, 물을 사용했다. 축제에서는 판매가 안 되지만 맛을 볼 수 있다는 것.
8도와 6도를 보고 있잖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모두 중앙미드필더 백넘버다. 공격과 수비, 중앙을 지배해야하는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허리를 담당하는 백넘버가 은하수 막걸리의 술 도수와 연결되어 새겨져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에겐 오늘 하루의 의미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