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18
영국의 평범한 미용사였던 조슈아 코바드(Joshua Coombes)는 2015년부터 런던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헤어컷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DoSomethingForNothing' 운동이다. 조슈아의 인스타그램에 담긴 변화된 노숙인들의 모습과 사연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조슈아가 부러웠다. 그는 이키가이의 세 번째 요소인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을 찾아낸 사람이다. 나는 과연 세상이 어떤 때 나를 필요로 할지 궁금해졌다.
질문 하나, 과거에 당신이 겪었던 어려움 중에서, 지금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경험이 된 것이 있나요? 가만있어 보자. 내가 살면서 언제, 어떻게 힘들었더라. 고등학교 때는 교우관계가 어려웠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내가 살던 곳과는 거리가 있는 강남의 명문 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소비 수준도 분위기도 우리 동네와는 너무 달랐다. 원래도 친구를 넓게 사귀는 성향이 아닌데, 초반에 많이 위축돼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표현이 참 그렇긴 한데, 나는 공부로 그 어색함을 이겨냈다. 다행히 몇몇 친구들을 사귀게 돼서, 지금도 가끔 만나고 있다.
대학생이 되어 나는 내가 잘못된 진로 교육의 산증인임을 깨달았다. 나의 주전공은 역사, 복수 전공은 신문방송학과 교육과학이다. 나는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을 골랐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전공들과는 무관한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맞는 건 못 찾아줘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는 직장에서 나로 인해 다수가 괴로웠다고 한다. 그들로 인해 사실 나도 적잖이 괴로웠는데, 어디 말할 데가 없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화 속 상황 이자 '잘못된 만남'이 따로 없다. 여행 삼아 우연치 않게 절에도 가고 성당에도 가게 됐다. 도반들이 군대 전우처럼 느껴졌고, 자매님들은 마치 오랜 친구 같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성당도 함께 졸업한 나인데, 아무래도 다시 입학하게 된 것 같다. 아마 집단상담을 받는다면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주제넘은 상상이지만, 어쩌면 내가 인생에서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바로 세워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 둘, 10년 후의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당신의 전문성이나 관심사가 어떤 방식으로 미래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2036년, 땅에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다니고, 하늘에는 UAM이 날아다닌다. 산업현장에서는 로봇이 만들어낸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 일을 하고 이전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소득만으로 산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85세가 넘어야 노인으로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사는 건 편하지만 외롭다. 자신들의 고민을 척척박사 AI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AI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일상적인 답을 한다.
공상과학 영화 같지만, 나는 일부분은 충분히 그렇게 될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6년에도 사람들이 ChatGPT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이런 거라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 나 어떻게 하면 좋겠어?", "헤어져야 돼, 말아야 돼?" 어쩌면 미래 사회에 가장 필요한 건 나처럼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