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55
"지금, 잘하고 계세요."
컨설턴트님이 설명을 이어갔다.
"다만,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먼저 도와주지 마세요. 지금은 일도 열심히 하지 마시고요.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억지로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지도 마세요. 울고 싶으면 울고 미워하고 싶은 사람은 그냥 미워해도 됩니다. 그냥 참으면 생각하지 않았던 순간 감정의 댐이 터지는 일이 생겨요."
나는 요즘 커리어 컨설팅을 받고 있다. 컨설턴트님은 처음에 왜 내가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하셨다. 전환하려는 분야가 지금보다 처우가 좋지 않은 편이라 더 신중하게 접근하셨던 것 같다. 상담사이셔서 그런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 마음의 빗장이 어딘가로 도망가 버린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이미 울만큼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나 보다. 감사하게도 컨설턴트님께 나는 마음 챙김까지 받게 되었다.
컨설턴트님께 백일 백장 글을 보여드렸다. 컨설턴트님은 내가 그동안 치료적 글쓰기를 해온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저널 치료'라는 생소한 단어를 알게 됐다. 저널(journal)이라는 말의 어원은 하루 또는 오늘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journée이다. 일기와 달리 저널은 자신이나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목적으로 한다. 내면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글쓴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백일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겠노라고 선언하면서, 나는 인생의 나침반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오십 여일 간 나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매일 나를 관찰하고 탐구했다. 내 안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면서, 난생처음으로 나는 나를 만났다. 그동안 나는 내가 대역죄를 짓더라도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사람을 찾아 헤맸었다. 이 사람은 나를 오롯이 이해해 줄까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러나 늘 내 곁에 있는, 모든 것을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매일 글을 쓴다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나에게 글쓰기란 의지뿐 아니라 충분한 자기 고찰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소중한 과업이었다. 하루 종일 그날의 화두를 고민하다가 마감에 쫓겨 허겁지겁 글을 써 내려간 날들도 많았다. 어떤 날은 마음속에 내내 글쓰기를 담아두었는데 그렇게 내보내려니 아쉽기도 했다. 생활에 쫓겨 나의 의식의 흐름을 잘 따라가지 못했던 날에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자책도 들었다. 그래도 완성된 글을 다시 읽어보며 나는 내가 나를 나인 듯 남인 듯 지켜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마치 글이 자화상 같았다. 나는 내 모습이 좀 더 또렷이 보일 때까지 글로 나를 계속 그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