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

[백일 백장] 100-54

그리스의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최초로 나무의 나이테를 발견했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의 뼈나 조개의 껍질에서도 나이테와 비슷한 흔적이 발견된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의 나이테를 우리는 연륜(growth rings)이라고 부른다. 사전적 의미로 연륜은 여러 해 동안 쌓은 경험에 의하여 이루어진 숙련의 정도를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무엇에 능하고 익숙하게 되는 것일까. 연륜의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샘플, 나 자신에 대해 떠올려 봤다.
나의 첫 번째 동그라미는 '걷기와 말하기'였을 것이다. 나는 다른 아기들처럼 여러 번 넘어지고, 말을 틀려가면서 잘 걷고 이야기하게 되었겠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강을 과감하게 건너가 본다. 두 번째 동그라미는 '사랑과 이별'이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헤어지는데 참 서툴렀다. 때로는 이기적이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이별이 아직도 낯설다. 그래도 이제는 나도 그대도 미워하지 않을 자신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마지막 동그라미는 '괴로움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처음에 나는 괴로움 앞에 원망을 방패 삼았던 것 같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하고 끊임없이 나를, 상황을 탓했다. 요즘의 나는 한 걸음 뒤에서 나와 나의 괴로움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괴로움이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우선은 괴로움과 친해질 작정이다. 나는 괴로움에 내몰리기보다는 잘 감수해 보고 싶어졌다.
저녁 무렵 시장에 가서 김밥을 먹었다.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귀인을 만났다.
"집에서 몇 시에 나오셨어요?"
"새벽 4시에 나왔지."
일요일 딱 하루 쉬시고, 매일 새벽 4시에 나와서 저녁 7시에 장사를 마무리한다고 하신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의 표정과 목소리가 너무나도 맑고 밝았다. 나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괴로움을 잘 감수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김밥 집 단골손님이 되어, 언젠가 연륜의 비밀을 알아내고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