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53
"그거 알아?"
"뭔데?"
"사람들이 너보고 카나리아라고 하는 거."
"카나리아?"
저녁을 먹다 말고 동료가 나에 대한 이야기라며 전한다. 영문을 모르는 나를 보고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제는 꽤 오래된 이야기이다. 참새, 타조 부인 등 나에게는 유독 새와 관련된 별명이 많았다. 아마, 내가 머리가 작은 편이라 그런듯하다. 어쨌든 카나리아는 사회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얻게 된 나의 조류 별명이었다.
그가 설명을 이어간다. 나는 그냥 카나리아가 아니고, 탄광 속의 카나리아라고 한다. 예부터 카나리아는 광부들에게 위험의 전조증상을 알려주는 새였다. 유독가스에 민감해 카나리아가 이상 징후를 보이면 광부들이 즉시 대피하곤 했다고. 나는 조직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업무에 종종 투입되곤 했다. 마치 카나리아가 살아서 탄광에서 나오는 것처럼, 내가 무사하게 일을 마무리하면 본인들도 그 일을 해도 된다는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그냥 '마땅한 수고 없이는 결실도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잔다르크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모스크바의 신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 애는 마치 불굴의 모험가처럼 북극 만년설 위에 깃발을 꽂고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주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 애의 행복이 그곳과는 전혀 다른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어요." 사회주의 운동에 자신을 던지려는 소녀 친구 니나에 대한 모스크바의 신사의 걱정 중 한 대목이다.
어쩌면 나는 소설 속 니나처럼 내가 하는 일들을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굳게 믿고 주장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목숨을 걸고 탄광에 들어가는 카나리아처럼, 전장에 임하는 잔다르크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의 행복이 전혀 다른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어느 보통의 아침 따뜻한 초콜릿 한 잔에 행복을 달래며, 이제는 신념이나 주장이 아닌 다른 어떤 행복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