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56
나는 한때 절대자를 미워했었다. 세상 만물을 뜻한 바대로 움직이는 어떤 힘이나 존재가 있다면,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아프거나, 별다른 죄가 없어 보이는 착한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너무 잔인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적어도 사랑으로 가득 찬 존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책에서 본 사람의 능력치 그래프는 우상향 직선이 아니라 계단형이었다. 고난과 역경 앞에서 곤두박질치기도 하지만, 회복 후에는 더 높은 점을 찍는 형태였다. 사람에 따라 그래프가 완만한 능선이거나 높은 산이 되기도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터였다. 순간,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절대자에 대한 화가 아주 약간 누그러졌다.
그러나 내가 막상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을 겪게 되니, 나는 다시 절대자가 미워졌다. 사람에게 고난과 역경만 주는 게 아니라 회복탄력성이라는 특별한 장치를 심어준 것까지는 머릿속으로 이해가 되었는데, 그 대상이 하필 나라니 속이 상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나는 고진감래를 믿으며 인내하고 살아왔는데,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절대자와의 화해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오늘 낮이었다. 부엌에서 딸기를 씻다가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순간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지난 며칠간 크고 작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사이에 시달렸다. 분명 아침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저녁인 채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어제 오후에는 따뜻한 침대에서 잠시나마 책을 읽었고, 오늘은 딸기를 씻어 먹었다. 정말 사소한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일상이 문득 고맙게 느껴졌다.
한 뇌과학자가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실험을 설계했다. 총 세 집단이 있다. 첫 번째는 실제로 아픔을 경험하고 다음에 또 아플까 봐 두려움을 갖게 된 집단이다. 두 번째는 직접 고통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첫 번째 집단을 관찰하면서 고통을 상상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된 집단이다. 마지막 집단은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은 집단이다. 어떤 집단의 고통 민감도가 가장 높았을까. 정답은 두 번째 집단이다.
우리의 뇌는 고통에 부딪히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능력치'를 얻게 된다고 한다. 뇌가 없는 아메바에게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반면 사람의 뇌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쉽진 않겠지만, '인생은 뜻대로 안 돼서 살만한 거야, 어찌 됐든 그냥 한번 가보자고'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우고,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 보자. 겪어보지 않고 옆에서 괴로움을 상상한 사람들이 더 아픈 아이러니한 연구 결과에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불안한 그대들이여,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시라. 나는 이제 맷집도 회복탄력성도 어느 정도는 있는 그야말로 '겪어본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