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63
커리어 컨설팅 마지막 회차에 선물처럼 '에니어그램' 검사 결과를 받아보게 됐다. 검사를 하면서 나는 나의 변화를 직감했다. 분기점에 선 문항에 답할 때, 나의 과거와 현재가 보였다. 나는 현재를 기준으로 신중하게 답했다. 검사 결과 나의 기본 성격유형은 '감정형'이다. 힘의 중심은 4에 있으며, 나의 날개는 '4W5'이다. 힘의 중심은 뭐고, 날개는 뭐람. 나를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에니어그램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했다.
에니어그램(Enneagram)은 사람의 성격을 9가지로 분류하는 성격 유형 이론이다. 9가지 성격 유형은 '2번 유형 조력가, 3번 유형 성취자, 4번 유형 예술가, 5번 유형 사색가, 6번 유형 충성가, 7번 유형 낙천가, 8번 유형 지도자, 9번 유형 중재자, 1번 유형 개혁가'이다. 에니어그램에서는 지성, 감성, 의지 중에 어느 것이 강하고 약한지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 가슴형은 감성, 머리형은 지성, 장형은 의지 중심으로 움직인다.
4번 유형 '예술가'는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유형이다. 감정적으로 정직하고 창의력이 뛰어나다. 자신을 잘 알며 감수성이 뛰어나다. 민감하며 말수가 적다.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해심이 많고 따뜻하며 격려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삶의 의미, 슬픔이나 고독에 민감하고 감정을 중시한다. 4유형의 장점은 섬세하고, 독창적이고, 예술적이고, 유행에 민감하고, 교양 있고,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울하고, 소유욕이 많고, 자의식이 강하고, 과민하고, 움츠러들고, 자기학대적 경향도 있다. 방종과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에니어그램에서 사람은 본래 유형 외에도 그 양옆에 위치한 유형들의 성향을 '날개', 보조적인 삶의 전략으로 선택한다. 같은 유형이라도 양쪽 날개 중 어느 한쪽이 얼마나 발달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상당히 달라진다. 나는 5번 날개를 쓰는 4번 유형에 해당한다. '4W5 보헤미안'은 좀 더 자신만의 스타일을 좋아하며 분석적이다. 나아가 기분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더 안정적이기도 하다.
에니어그램의 유형들을 심리학 이론으로 구분한 사례도 있다. 4번 유형은 호나비언 그룹의 '움츠림형'에 속한다. 리드하는 포지션에 있거나 외부 환경에 휘둘리는 것도 불편해하는 편이라서, 보통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선호한다. 하모닉 그룹에서는 '반응 그룹'에 속하며, 문제에 봉착했을 때 감정을 숨기기 힘들어하는 편이다. '난 상처받고 슬퍼, 내 이야기 좀 들어줘'와 같이, 4번 유형은 본인이 믿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리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을 믿을 수 있게 된다.
4번 유형은 프로이트의 대상관계이론 그룹의 분류 상으로는 '좌절 그룹'에 속한다. 나만의 이상적인 세계에 비해 현실은 나의 독특한 정체성을 충분히 이해 및 존중해 주지 않는다. 4번 유형의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세상이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가 없어서 대상에게 좌절하곤 한다. 결국 에니어그램도 MBTI처럼 사람의 유형화에 불과하겠지만, 내가 사람에게 실망하고 도망치려고 했던 걸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4번 유형은 마음이 건강하고 안정될 때, 4번의 변덕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 1번 개혁가 유형의 절제력과 실천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힘들거나 압박을 느끼면 2번 조력가 유형으로 이동하여, 갑자기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관심을 갈구하며 의존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4번 유형은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 루틴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감정에 있어서는 객관화 연습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나 자신으로 여기기보다는 구름이 지나가듯 관찰해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4번 유형의 좌우명은 '부러워만 하다 소중한 것을 잃는다'이다. 성장 전략은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고 자책하지 마라.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라. 자신의 예술 감각, 정서를 소중하게 여겨라'이다. 나는 꽤 높은 점수가 나온 5, 6, 7, 1번 유형의 좌우명과 성장 전략도 공감이 됐다. 좌우명은 '걱정의 96%가 쓸데없는 것이다. 심판하는 사람은 사랑할 시간이 없다.'이고, 성장 전략은 '함께 어울려 도우며 살아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용기를 가져라. 자신을 믿고 의미 있는 일을 하라. 다른 사람의 약점보다 강점을 보라.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아라.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라'이다. 그냥 검사결과지 이겠거니 했는데, 모든 말이 귀했다.
컨설턴트님과 마지막 상담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 감정을 많이 수용해 주셨고, 이해받는 기분이 들어 충만했다. 우리는 내가 썼던 글, 나에 대한 심리검사 결과, 선택 가능한 커리어 경로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선생님, 상담 심리 공부 시작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상담교수로 재직 중이신 컨설턴트님의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에니어그램 결과를 보니 내가 겪었을 마음의 힘듦이 공감되고, 많이 안타까웠다고 하셨다. 그렇다. 사람마다 아픔의 급소가 다르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아픔도 함부로 경시할 수 없다.
몇 가지 당부도 있었다. 첫째는 마음의 힘듦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컷 울고, 미우면 미워하라. 내 감정의 그릇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커서 그들이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위로받을 것. 다른 사람들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고 하셨다. 둘째는 살짝 손해 보는 마이너스 행동도 하라는 것이다. 사람을 키워야 하고, 나에게도 이럴 때 곁을 지켜줄 내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는 계속 글을 쓰라는 것이다. 4번 유형의 예술적 창의성을 계속 살려나가면 좋겠다고 하셨다. 심리나 상담 공부를 통해 적어도 나 하나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나, 인생의 나침반을 찾아 나서길 잘한 것 같다.
* 한국에니어그램교육연구소의 한국형 에니어그램 성격유형검사를 실시하였습니다.
* 해석은 나무위키, Gemini를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