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2
2026년은 붉은 말의 해이다. 요즈음 말을 소재로 한 신년 덕담을 종종 듣게 된다. '그대여 적토마처럼 박차고 나아가라'는 식이다. 물론 좋은 취지로 건넨 말인 줄 안다. 생각해서 해 준 덕담인데, 고마운 걸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덕담을 듣고도 마음 한구석에 '말씀은 고맙지만'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는 고마움도 모르는 사람인 걸까.
"말띠 해. 적토마나 다크호스 욕심내지 말고 견마지로 스트레스받지 말고 새옹지마 새기셔요. 말은 구토를 못한답니다. 명마는 빨리 달리는 말이 아니라 잘 서는 말이라네요."
현명한 새해 인사말이었다. 좋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다분히 '견마지로'의 삶을 살아왔다. 스스로 '나는 뚝심이 있는 황소 같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사전에 나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고, 누가 뭐라고 해도 옳다는 확신이 들면 고집스럽게 해내곤 했다. 적토마나 다크호스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내 본 적은 없지만, 그냥 '고진감래'를 믿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 주먹을 꼭 쥐었다가 가만히 손을 펴본다. 확실히 편하다. 지금까지 왜 이걸 몰랐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사실 몰랐던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그래도 조금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애써 모른 척해온 것 같다. 아마 앞으로 살면서 어느 때에는 조금은 손에 힘을 줘서 해야 하는 일들도 생기겠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나에게 진짜 소중한 일이라면 '견마지로'처럼 힘주지 않아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중국 전한 시대 ≪회남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이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옛날에 새옹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서 낙심하였는데, 그 후에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한 필 끌고 와서 그 덕분에 훌륭한 말을 얻게 되었으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으므로 다시 낙심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아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아니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표준국어대사전).
새해 첫날을 맞이하면서, 한 해 동안 무탈하기를 소원했었다. 고작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무탈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아 버렸다. 거센 파도 위에 조각배를 타고 항해하듯, 무탈하면 어쩌면 그건 인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2026년의 어떤 날은 고요하게 순항하고, 배가 뒤집어질 것처럼 요란한 날도 있겠지. 어떤 순간에도 '새옹지마'를 기억하기를, 그리하여 삶을 담담하게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