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3
"여러분, 행복하신가요?"
나는 몇 해전 김정운 교수님의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다. 교수님의 등장만으로, 강의는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작달막한 키에 뽀글뽀글한 파마머리, 동그란 안경까지. 외모로 사람 판단하면 안 되는데, 안 되는 건 아는데. 이건 정말 쌍방 과실 그 자체였다. 옆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킥킥대고 난리가 났다.
강연은 재미있었다. 교수님은 표정으로 말로 온몸으로, 듣는 이를 유쾌하게 하는 힘이 있는 분이셨다. 강연을 듣고 나는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그중 핵심은 행복이란 강도가 아니라 빈도로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의 심리 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먼 교수는 '하루의 삶 속에서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녀에게 백 송이 장미꽃을 한 번에 안겨 주는 것보다는 하루에 하나씩 건네주는 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날 이후 나는 '내가 무엇을, 누구를, 어떤 순간을 좋아하는가'에 대해 때때로 떠올리게 됐다. 어떤 날은 노트에 생각나는 것들을 좌르륵 써보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해봐야 알지'하면서 해보지 않았던 일들에 도전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반복하면 인생의 설레는 순간이 점점 더 많아지리라. 불교적 관점에서는 그저 괴롭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취향이 있는 삶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 건 몸소 체험한 사실이다.
생각난 김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써보기로 한다. 꽤 시시콜콜할 예정이다. 나는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 책을 읽고 기록하고, 간혹 '이게 이거였나?'하고 각각의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으면 행복하다. 책방 구경을 좋아한다. 중고서점에 읽고 싶었던 책들을 사냥하러 갈 때면 원시인의 희열을 느끼곤 한다. 구입한 책들을 보물처럼 품에 안고 집으로 올 땐 혼자 속으로 '으흐흐' 웃는다. 글을 쓰다 보면 몰랐던 것을 더 찾아보거나 내 감정을 조금 멀리서 들어다 볼 수 있어 좋다. 고령화 관련 현상이나 고령자 주택 탐방을 좋아한다. 책을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단, 자비출판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음악을 좋아한다. 틈날 때마다 음악 감상 카페나 음악 축제에 간다. 언젠가 한 곡정도는 악보를 보지 않고 신나게 드럼 연주를 하고 싶다. 영어, 일본어 노래를 들을 때면 가사를 음미하는 것을 좋아한다. 조각조각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재미가 있다. 작사를 해보고 싶다는 상상도 해본다.
나는 나를 잘 대접할 때 행복하다. 잘 때는 양모이불을 덮는다. 포근해서 행복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으로 발깍지를 껴주고 제일 고생 많았던 발을 달래준다. 걷기를 좋아한다. 가끔 꽤가 나긴 하지만 계단 오르기도 좋다. 요가를 좋아한다.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고요하게 살펴볼 수 있어 좋다. 혼밥이어도 맛집을 찾아간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편이다. 녹색지구 수비대가 된 거 같아 뿌듯하다. 매일 아침 보시 계좌에 작은 돈이라도 입금한다. 친절한 사회에 일조한 것 같은 뿌듯함이 추가된다.
공간 이동, 여행을 좋아한다. 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낯선 대화가 찾아오고, 영감이 뒤따라온다. 혼자 하는 여행도 괜찮다. 온천을 좋아한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깨끗해진다. 30분이라도 멋진 카페, 다원에 앉아 차를 마시면 행복하다. 맑은 날도 비 오는 날도, 그냥 좋다. 대화를 좋아한다. 서로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다면 더없이 좋다. '에고', 숨이 차오른다. 오늘은 여기까지. 결국, 행복은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