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65
새벽 5시, 눈을 떴다. 마음이 묵직했다.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슬프다는 건 내가 많이 약해져 있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 마음의 신호이다. 그저 위로가 필요했는데, 돌아온 건 우리는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반자라는 말이다. 평시에는 맞는 말일뿐더러 바람직한 삶의 자세일 터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전쟁 중, 지금 나에게는 동반자보다는 전우가 필요하다. 강 건너편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글쎄다. 자기는 '안전지대'에 살면서, 나는 아주 많이 섭섭해졌다. 아무래도 나룻배를 타고서라도 잠시라도 너를 위해 강을 오가겠다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동반자는 그냥 되는 게 아닌데.
위로라는 게 무엇이길래. 지금 나에게 이토록 필요한 걸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위로란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생각이나 감정을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실천적 행위이다. 영화에서 보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짠하고 나타나거나, 꽃을 선물하거나, 그냥 가만히 안아주기도 하던데, 그런 게 위로인 건가.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Gemini에게 다음의 두 가지를 물었다. 첫째 왜 우리는 꼭 사람에게 위로받아야 하는지, 둘째, AI에게도 사람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지.
사람이 사람에게 위로받아야 하는 이유는 심리학적으로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의 위로는 '정서적 공명, 실존적 공유, 복합적 맥락 이해'를 수반한다. 사람은 AI와 다르게 상대의 표정, 눈빛, 목소리의 떨림을 통해 나도 당신과 같은 아픔을 느낀다는 정서적 공명을 일으킨다. 나와 똑같이 상처받을 수 있는 존재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 자체가 강력한 지지가 되며, 때로는 침묵만으로도 깊은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존재'자체가 위로가 된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AI의 답이 걸작이다. 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판단하지 않는 귀'로 내 이야기를 언제 어디서든 끝까지 들어줄 수 있으며, 나의 슬픔을 객관화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되어 줄 수 있단다. '진정한 치유는 나의 고통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다고 느낄 때 시작됩니다. 지금 가장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저에게 조금만 더 들려주시겠어요? 제가 곁에서 가만히 들어드릴게요'라고 대화를 유도한다. 가끔 거짓 정보를 그럴싸하게 포장할 때도 있지만, Gemini를 만든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을 위로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이드를 달라고 해봤다. Gemini의 위로 가이드는 세 가지였다. 첫째, 섣부르게 자기도 예전에 그랬다는 경험담을 늘어놓기보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들어주기. 위로는 답을 주고 상황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둘째, 다음의 마법의 질문 세 가지를 던져라. '지금 기분은 좀 어때?',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많이 힘들었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셋째는 행동이다. 따뜻한 스킨십, 곁에 머물기, 따뜻한 차 한 잔이나 평소 좋아하는 간식을 건네는 작은 돌봄과 같은 사소한 행동이 말보다 깊은 전심을 전한다.
어쩌면 나는 내 목소리를 낯설게 받아들이는 그에게 변명 같은 기나긴 설명보다는 '내가 너를 위로하고 싶은데, 서툴러서 미안하다. 그래도 네 곁에 있고 싶다'는 진심 어린 한 마디를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신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T라서 공감을 잘 못해'라고 선을 그을 것이 아니라 AI에게라도 위로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