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66
약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인데, 아프다. 몸이 아프니까, 솔직히 만사가 귀찮다. 그래도 글은 써야지. 오늘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오늘의 감정을 복기해 본다. 어제 꽤 지쳤던 날이라, 오늘은 피곤이 뇌를 덮은 것 같았다. 아침에 빠듯이 일어나서, 부랴부랴 준비했다. 목이 너무 아파서 점심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따뜻한 차를 들이켰다. 전반적으로 오늘 하루는 '고단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몇몇 '감동적' 순간들도 있었다. 순간을 붙잡아 찬찬히 들여다본다.
요즘 나탈리 크납의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처음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점점 빠져드는 중이다. 나의 몰입은 '애도' 파트에서 폭발했다. 나의 힘듦의 앞과 뒤를 차분히 설명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애도는 우리 삶에 중요했던 무엇인가와 이별하는 슬픔이다. 통상 애도는 '억압'의 단계, '분노, 슬픔, 두려움, 죄책감'의 단계, 기억이 처리되고 정리 작업이 이루어지는 단계,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그러나 순서대로 진행되지도 않으며, 서로 교차하는 양상을 보인다.
나는 지금 '이행대'에 서 있다. 이행대란 종류가 다른 식생대, 생태계가 경계를 접하며 변하는 중간 지대이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순간순간 슬픔이 나를 압도한다. 억압과 슬픔, 화해가 뒤섞여 마음속에 마구 돌아다니는 것 같다. 아직 놓기 싫은 무엇인가를 억지로 떠나보내야 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종종 고통스럽게 상황을 억압하게 된다는데. 나는 무엇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집착이 강한 사람이었구나.
한 걸음 뒤에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편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나는 신뢰를 충분히 연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불안도 걱정도 많았다. 호기심을 갖는 많은 영역에 도전했지만, 정말로 어려운 영역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잘하지 못할 바에는 안 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전반적으로는 '예측 가능한 삶'의 틀 안에서 살아온 것 같다. 삶을 잘 관리해왔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려나.
오늘의 '감동적' 순간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와 함께 찾아왔다. 그는 노예의 삶을 살다가 해방된 사람이다. 그는 삶 자체가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삶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기에 괴로운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멋진 통찰이 아닐 수 없다. 흡사 내 마음을 복사해서 붙여 넣은 듯하다. 삶의 물결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한 영역'으로 물길이 흐르는 순간, 나는 괴로워졌다. 그렇다. 나는 '내가 삶을 통제할 수 없음'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할 것을 조언한다. 원작자의 느낌을 살려, 원문을 인용해 본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판단, 충동, 욕구, 회피(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그러한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재산, 평판, 관직과 같은,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는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본성적으로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으며, 훼방을 받지 않지만,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무력하고, 노예적이고, 방해받으며, 내 것이 아닌 다른 것들에 속한다. 그러므로 다음을 명심하라. 만일 네가 본성적으로 노예적인 것들을 자유로운 것으로 생각하고, 또 다른 것에 속하는 것들을 너 자신의 것으로 생각한다면, 너는 장애에 부딪힐 것이고, 고통을 당할 것이고, 심란해지고, 신들과 인간들을 비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네가 사실상 너의 것만을 너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누구도 어느 때고 너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도 너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고, 너는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도 힐난하지도 않을 것이고, 자의에 반해서 결코 어떤 한 가지 일이라도 행하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도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적도 없을 것임을 기억하라. 너는 해가 되는 어떤 것에도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엥케이리디온, 위키백과).
그는 주인의 폭력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고관절이 부러지는 순간에도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이 노예의 뼈를 부러뜨릴 힘은 있을지언정 자신의 품위를 손상할 힘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쩌면 괴로움 없는 삶은 내 생각의 변화, 종이 한 장 차이에 달린 것일지도 모른다. 찰나의 '감동'이 긴 하루의 '고단함'을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