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67
'트라우마(trauma)'는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정신 의학 용어로 과거의 충격이 현재까지 미치는 것을 말한다. 트라우마는 사람에게 '심리적 흉터'를 남긴다. 그동안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일들까지 책임을 지려고 끙끙댔던 것 같다. 사실 아직도 조금 그렇다. 생각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마음이 아직 머물러 있다. 나는 현실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을 아직 완전히 놓지 못한 것 같다.
나탈리 크납은 폭풍우에 손상된 나무는 결코 이전과 같은 나무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무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아물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무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가장 큰 변화는 '관계'이다. 폭풍우 전의 관계가 나는 아직 아프다. 고마운 사람도 있지만 선뜻 만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로 그러하다. 나는 그들을 통해 '과거의 나'와 만난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따갑고, 자괴감이 든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마저도 애와 증이 격변하는 통에, 잠시 멈추고 싶어졌다.
반면 폭풍우가 지나간 후 맺은 관계는 전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편안하다. 나는 그들의 눈을 보며 경청하고, 마음속으로 평화를 빌어주곤 한다. 그들에게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그럴 수도 있지'이다. 살짝 화가 치미는 순간도 물론 있었지만, 다음 날이 되면 스르륵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내가 좀 더 개방적인 사람이 된 모양이다. 나 자신에게도 '그럴 수도 있지' 해주고 싶은데, 아직은 자책이 많이 든다. 내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그동안 수고 많았다. 뭐든지 잠시 멈추고 쉬어도 괜찮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다른 변화는 물질적 욕심이 줄어들었다. 옷이나 화장품도 그렇고 없어도 큰 불편이 없다면 물건을 잘 사지 않게 됐다. 물건도 인연인지라, 함부로 사고 싶지도 버리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삶에 저녁이 찾아왔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책을 보거나 요가를 한다. 시간이 늦고 빠름은 있어도 매일 딸아이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평범한 일상의 힘을 새롭게 배웠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나에게는 고맙게 다가왔다.
예전엔 갈림길에 서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급코너 구간에 진입 중이다. 속도를 낮추고 심호흡을 해본다. 십 년 전 가지 않았던 길이 나의 운명이었을까. 먼 길을 돌아 다시 그 자리에 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은 어느 길을 갈지 내가 선택한다기 보다, 길이 나를 찾아온 것 같다. 나는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나를 탐구했다. 전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좀 더 또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토록 피해왔던 '불안'을 내 손으로 선택하려고 한다.
혹자는 삶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살만한 것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관리된 삶'은 죽음과 같다는 혹평도 난무하다. '통제된 삶이 얼마나 안정적인데'하는 서운함을 뒤로하고 '불안'의 긍정성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무섭다는 말을 반복한다. 인간에게 죽음만큼 변화무쌍한 미지의 영역이 또 있을까. 죽음 앞에선 누구나 삶이 뒤흔들릴 것이며, 초심자가 될 터이다. 한번 연습해 봤으니, 때가 되었을 때 나는 기쁘게 새로움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잠시 멈춤 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