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백일 백장] 100-74

"딱 백일 만이다, 절대 안 올 거야."
엄마는 백일만 아이를 봐주는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백일하고 하루 되는 날, 현관문을 열면서 엄마가 멋쩍게 웃었다.
"너 보러 온 거 아니야. 아가랑 정이 들어버려서 그래."
어느새 백일이 십여 년이 됐다. 그렇게 손녀는 엄마의 막내딸 같은 존재가 되었다. 딸아이 사진을 볼 때면, 사실 내게는 늘 아이만 보였다. 요만했던 아이가 이만해지는 모습이 기특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병풍처럼 늘 아이 뒤에 서 있던 엄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마다 엄마가 있었는데, 이제서야 엄마가 보였다. 커가는 아이와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 사진을 보면서, 노인이 다 같은 노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60대, 70대, 80대. 젊음이 지나가는 속도만큼 늙음이 지나가는 속도도 빨랐다.

"기다리면서 좋은 날이 다 가버린 거 같아."
엄마의 한마디에 심장이 쿵 하고 바닥에 붙었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원래 엄마는 간호사가 꿈이셨다. 간호대에 붙었지만, 대학에 가지 못했다. 외할아버지가 '여자는 공부하는 거 아니다'라며, 합격증을 숨기셨단다. 그래서 그랬을까. 엄마는 나를 오빠랑 똑같이 학원에 보냈다. 피아노도 가르쳤으니, 더 해줬던 것 같기도 하다. 시대가 달라진 것도 있지만, 나의 학업과 직장 생활은 오롯이 엄마의 공이 컸다. 엄마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꿈이었다.
나의 성취는 얼마간 엄마에게 빚을 졌다. 한 번도 엄마가 내가 무언가를 했으면 하고 바랬던 적은 없었다. 그냥 내가 엄마의 마음에 부응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학사학위가 다섯 개, 석사, 박사. 나는 끝없이 공부를 했다. 직장인이 된 후로는 전력질주했다. 엄마는 내가 행여 사회생활을 포기할까 봐, 긴 세월 아이를 돌봐주셨다. 그리고 내가 승진을 하면 누구보다도 기뻐하셨다. 세상 살이가 힘이 들 때, 나의 인내심의 원천은 다름 아닌 우리 '엄마'였다. 꼭 내가 엄마의 인생을 훔친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라도 갚아주고 싶었다.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니, 어떤 사람은 '이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느 한쪽이 희생하는 관계, 다른 한쪽이 온전히 자립하지 못하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왜 그렇게도 괴로웠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전부는 아니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일을 쉽게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엄마가 나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이제 나는 미안함은 뒤로하고, 조금은 가벼워지고자 한다. 그래야 엄마도 행복하실 것 같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