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백일 백장] 100-75

출퇴근 길에 '로또 명당'이 있다. 로또 1등을 무려 17번이나 배출한 곳이라고 한다. 내가 주로 아침 시간에 지나다녀서 그랬는지, 평소에는 가게 안에 사장님만 덩그러니 앉아 계시고는 했다. 나는 '로또 명당도 별거 없네'하며, 비웃듯이 가게 앞을 빠르게 지나갔었다. 그런데 오늘 낮에 나는 '로또 명당'의 진가를 봤다.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닌 듯한 익숙한 표정의 사람들이 행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로또 명당'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 질서정연하게 일렬로 서있었다.
나는 속내가 복잡해졌다. 의심스러운 마음과 나도 줄을 서고 싶은 마음이 순간 교차했다. 첫 번째 의심의 화살은 '로또 명당' 사장님을 향했다. '저렇게 당첨이 잘 되는 곳이면, 사장님이 당첨됐겠지. 왜 저기 계시는지 모르겠네.' 의심은 금세 비아냥이 됐다. 다음 의심의 화살은 '확률과 통계의 법칙'으로 전투력을 높였다. '명당'이라고 믿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사니까, 모 집합이 커져서 당첨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정말 절대적으로 당첨 확률이 높은 곳인지 못 믿겠다는 결론이었다.
나름 합리적 의심을 끝냈음에도, 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도 슬쩍 뒤에 가서 줄을 서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왜 그랬을까. 내 마음이 흔들렸던 이유는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로또를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묘했다. 그들은 서로 표정이 비슷했다. 특히 맨 뒤에 서있는 사람은 꽤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것이 뻔한데, 얼굴에 지루한 표정이 전혀 없었다. 마치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처럼, 경건하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로또 유경험자이다. 선물로 받거나 사거나, 지갑에 로또를 고이 모시고 다녔었다. 가끔은 일부러 일주일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쉬운 마음으로 로또를 맞춰보기도 했다. 꽝이거나 오천 원 당첨인 것보다는 '나에게는 로또가 있다'는 위로의 값이 더 높았다. 사는 게 팍팍할 때, 비상구가 필요할 때, 지금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래도 미래를 그려보고 싶을 때. 그럴 때 사람들은 로또를 산다. '로또 명당'에 서 있던 사람들은 '인지상정'이 어떤 건지 제대로 아는 동지들이었던 셈이다.
나는 오늘은 그들과 합류하지 않았다. 아마 아직은 내가 사는 게 버틸만 한가 보다. 그러나 나도 기댈 언덕이 필요한 때가 되면, 허무맹랑한 꿈이라도 갖는 날이 온다면, 우주의 기운을 빌려서 어떻게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나도 동지들과 같이 '로또 명당'에 줄을 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일주일분의 행복을 구독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