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77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대화가 있다. 첫 번째는 서로 원수가 되는 대화이다. 상대방의 말에 즉각적으로 반박하거나 비웃는 경우이다. 한 마디로 싸우자는 뜻이다. 다음은 서로 다가가는 대화이다. 경청하고 공감하는 대화이며, 대화를 통해 서로 마음을 열게 된다. 마지막은 서로 멀어지는 대화이다. 상대방의 말에 화제를 돌리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대꾸하지 않는 경우이다. 다른 이야기를 하며 은근슬쩍 회피하거나, 상대방을 투명인간 취급할 때이다. 서로 원수가 되는 대화나 멀어지는 대화를 자주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가 소원해지기 쉽다. 관계가 소원해지는 대화는 통상 다음과 같은 코스를 밟는다.
"당신은 어떻게 된 사람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그게 왜 내 잘못이야, 나도 몰랐다고."
"바보야? 당신?"
"쾅."
한 사람이 비난으로 선공을 시작한다. 상대방이 본인도 희생자임을 주장하며 방어한다. 때로는 '당신도 그때 그랬는데, 기억이 나지 않느냐'라고 하며, 역공격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둘 중의 한 사람이 경멸을 표한다. 내가 너보다 잘났고, 너는 나보다 아래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이 정도로 대화에 독이 흩뿌려지면, 기존의 관계가 녹아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둘 중에 더 열받는 한 사람이 '담쌓기'를 시작한다. 공간을 벗어나거나, 같은 공간에 있어도 반응을 회피하는 것이다. 귀는 있으되, '나는 너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라고 최면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는 나의 대화를 되돌아보았다. 철없던 시절, 감정이 한없이 일렁일 때면 나는 원수가 되는 대화도 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용기였는지, 객기였는지. 정말 마음이 상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경계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고개를 넘으며, 나는 좀 달라졌다. 잘 듣고 싶어서 상대방의 눈을 보게 됐다. 귀로는 말을 듣고, 눈으로는 눈빛을 읽는다. 가끔은 미세한 표정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저녁이 되면 피곤한 날도 많아졌다. 대신 원수가 되는 대화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왜 나는 그동안 종종 외롭고 쓸쓸했을까. 나는 내가 중요한 걸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바로 사람을 가장 외롭게 하는 대화는 원수가 되는 대화가 아니라, '멀어지는 대화'라는 점이다. 원수가 되는 대화에는 부정적 감정이라도 담겨있지만, 적극적 무관심이나 소극적 회피는 서로에게 '무시'라는 상흔을 남긴다. 나는 불편한 이야기 앞에서 전처럼 호전적이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하는 고급 기술을 발휘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때때로 아쉽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거였다.
어떤 때는 나는 불편한 이야기를 돌파하고 싶지만, 상대방이 화제를 돌리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도 꽤 있었다. 대화는 둘이 하는 거니까,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방이 다른 소리를 하는 대로, 대화가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시간이기도 했고, 나의 경계를 그가 무시한 것이기도 했다. 아니라면 대화가 끝난 뒤 씁쓸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입맛이 무지 썼다. 이제는 멀어지는 대화를 그대로 두지 말아야겠다. 나에게는 내 대화의 경계를 지킬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