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백일 백장] 100-78

"관리형 독서실 보내주세요."
"응? 그게 뭔데?"
공부에도 트렌드가 있다. 아버지 세대에게 도서관은 있지만, 독서실은 없었듯. 우리 세대는 독서실은 경험해 봤지만, 관리형 독서실은 금시초문이다. 혹은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트렌드에 뒤처진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관리형 독서실을 찾아봤다. 관리형 독서실 또는 관리형 스터디 카페는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었다. 어떻게 도와주느냐, 독서실에 총무님 대신에 과외 선생님이 상주하는 거다. 관리형 독서실의 선생님은 시간표부터 학습 전략까지,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핸드폰 반납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학생이 관리형 독서실에 처음 방문하면 MBTI 검사를 한다. MBTI에 빗대어 학생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때 동행한 보호자의 MBTI도 함께 파악한다. 보통의 MBTI와 다르게 오로지 학습 측면에서만 MBTI를 해석하는 게 독특했다. 예를 들면, 진로 방향성 등 큰 그림은 N형 학생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지만 S형 학생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N형 학생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반면, S형 학생은 경로를 불문하고 문제를 잘 풀 수 있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 등이다. 평소 MBTI에 관심이 있던 나였지만, 학습 측면에서 이렇게까지 MBTI를 적용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공부 방법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이 신선했다. 그리고 그동안 내 유형의 관점을 은근히 강요했던 건 아닌지 반성도 되었다.
관리형 독서실에서라도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씁쓸해졌다. 관리형 독서실에서 공부란 기본적으로 '하기 싫은 것을 참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잘해야 하는 이유는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두기 위해서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통하는 참으로 실용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혼자 맨땅에 헤딩하던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학원도 과외도 별로 다니지 않았던 나는 그야말로 혼자 고군분투했더랬다. 나 역시 공부가 괴로웠던 것 같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서, 힘들고 오래 걸렸다. 그래도 뒤돌아보니 그 과정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공부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도 공부가 아니었을까.
"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들여다보며 바닥난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인간 사회 자연을 알아가려는 기꺼운 노력이며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기 위한 분투다."
생태학자인 '최재천의 공부'에 나오는 글귀이다. 공부의 긴 터널을 뚫고 나온 자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문구. 시작은 남이 알려준 방법대로 빨리 갈지라도, 그 끝에는 스스로 깨치는 공부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내가 N형의 사람이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 나의 공부는 언제까지나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