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 날씨 '평정심'

[백일 백장] 100-79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목소리에도 감정이 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평소와는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어제 나는 난생처음으로 퇴사 통보를 받았다. 같이 일하던 직원이 이직을 하게 됐다고 알려온 것이다. 오늘은 사직원을 제출했다고 연락이 왔다. 기분이 묘했다. 놀라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 마음에 별 동요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사고나 질병 같은 더 나쁜 경우의 수를 상상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퇴사나 이직은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내가 전보다 평정심을 갖게 된 걸까, 그냥 연륜이 쌓인 걸까.
평정심은 감정의 기복이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이다. 오늘 나의 감정 날씨는 과연 평안하고 고요했을지 돌이켜 보기로 한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본다. 아침에는 고단하게 눈을 떴다. 전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신경을 썼더니, 에너지가 떨어졌나 보다. 이불과 헤어지기가 서운했다. 빰을 비비적대다가 마지못해 이불과 이별을 고했다. 오후에도 에너지 소모는 계속됐다. 사람을 많이 만났다. 또 기가 빨렸다. 나는 확신의 I가 맞다. 에너지를 많이 방출한 날은 목소리도 잘 안 나온다. 오늘도 그랬다.
그래도 한 사람은 건졌다. 우리는 어색한 사이였다. 나는 '오늘은 이 사람이다'라는 마음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적당한 맞장구도 잊지 않았다. 대화 중 적당한 공백이 지속되면, 흡사 소개팅하는 마음으로 나름 엄선한 질문을 던졌다. 나보다 선배인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배려를 다하고 싶었다. 만날 때는 쭈뼛거리던 그가 헤어질 때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그를 선입견으로만 판단하는 잘못을 범했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은 그럴만한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닌 이유다. 그의 웃음 앞에서 나는 기분 좋은 감사함을 느꼈다. 진심이 통한 것 같아서, 홀가분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나와 혈육인 사춘기 소녀와 긴장의 대치가 일어났다. 돌이켜 보면 별일도 아닌데, 감정적 대답에 나는 그만 기분이 상했다. 괘씸했다. 나는 잠시 속으로 삭이다가 불편한 감정을 그녀에게 먼저 털어놓았다. 그녀는 눈만 깜빡깜빡 무대응이다. 심호흡을 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 그녀가 웃는다. 다행히 오늘의 대치 상황은 종식된 것 같다. 잠정적이겠지만.
오늘 나의 감정 범주는 슬픔, 기쁨, 분노였다. 아침에 일어날 때 고단함과 서운함. 직원의 퇴사 통보에 묘함, 담담함. 어색했던 선배와의 대화에서 기분 좋음, 감사함, 홀가분함. 사춘기 젊은 피와의 투닥거림에서 기분 상함, 괘씸함. 여기에 '얼마 되지도 않는 주식을 팔까 말까'하는 미련, 골치 아픔, 괴로움까지. 양심에 손을 얹고 감히 나의 오늘 하루가 '평정심'으로 채워졌노라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나는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감정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