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과 '감사'는 다르다.

[백일 백장] 100-83

어느덧 행복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3주가 지났다. 첫 번째 주에는 건강일기와 장점 일기를 작성했다. 건강일기는 그날 나의 몸의 움직임과 그에 대한 느낌을 쓰는 것이다. 나는 건강일기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썼다. 그런데 장점 일기는 혼자 끙끙 앓기 일쑤였다. '써야 잘 수 있는데, 어쩌면 좋다는 말이냐'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처음 몇 번은 장점이 술술 떠올랐다. 나에 대해 탐구하고 분석했던 과정이 조금은 도움이 됐다. 그러나 장점 일기를 거듭할수록 점점 바닥이 드러났다. 나는 낯간지럽지만 주변에 나의 장점을 물어보기도 하면서, 근근이 빈칸을 메울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2주 차에는 여기에 다행 일기가 더해졌다. '나는 어떠해서 다행이다, 나는 어떠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두 줄만 쓰면 되는 건데. 오호통재라, 이것도 쉽지는 않았다. 밤이 되면 나는 그날의 좋았던 일을 샅샅이 복기했다. 끝내 생각이 안 나는 날도 상당했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일기를 써야 잘 수 있다'라고 속으로 되뇌며, 낮 시간에 '다행'이 발견되는 족족 메모를 했다. 나중에는 '다행'이 찾아지면, 기쁘기까지 했다. '아 오늘은 고민 없이 빨리 일기를 쓰고 잘 수 있겠구나.'
이번 주부터 감사 일기가 시작된다. 작성 가이드에는 다행을 감사로 바꾸면 쉽게 쓸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나는 좀 아리송했다. 다행과 감사는 뭔가 다를 것 같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다행은 뜻밖에 일이 잘되어 운이 좋은 것이다. 다행의 반대말은 불행이다. 다행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일이 잘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행은 네잎클로버처럼 쉽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반면, 감사는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다. 감사는 좋은 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그제야 나는 다행 일기에서 '나는 어떠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작성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척척박사 Gemini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오늘은 공손하게 존댓말로 프롬프팅을 해본다. Gemini는 다행과 감사의 차이를 몇 가지 측면에서 꼼꼼하게 짚어줬다. 다행인 상황에서 우리는 '살았다. 큰일 날 뻔했네'라고 말할 수 있다. 특정한 대상이 없더라도, 그냥 상황 자체가 좋게 풀린 것에 대한 만족감이자 안도감이다. 그러나 감사에는 통상 고마운 대상이 있으며, '덕분에 잘 되었습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하게 된다. 겸손하게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준 존재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이다. 감사는 보다 능동적 감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문득 성당에 피정을 갔을 때, 신부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여러분, 혼자 길을 가다가 사고로 다리가 골절되었다면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기 쉽죠. 만약 버스 사고가 났는데 모두 죽고 나만 살아남았다면, 골절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음에 아마 감사 기도를 올릴 겁니다. 현장에서 나를 옮겨준 의료진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고요. 그런데 사실 내 상황은 다른게 없잖아요. 감사라는 건 그런 겁니다." 사실 나는 말씀을 듣던 그때도, 지금도 감사가 여전히 어색하다. 그래도 어쩐지 행복일기 덕분에 세상의 이치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