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극복해야 인생의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여행의 일정 중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노르웨이에서 피요르드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도시 여행자라 어디를 가도 주로 도시 위주로 여행을 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70%가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도 등산 가는 걸 안 좋아하는데 굳이 피요르드를 가서 하이킹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것도 여자 혼자 피요르드를 하이킹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러나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본인은 가보지 않았지만, 피요르드를 가보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꼭 가라고 추천을 했다. 그리고 오슬로에 출장을 가본 적이 있으셨던 아버지는 오슬로는 그다지 볼 게 많지 않았다고 회상하며 피요르드를 갈 게 아니라면 무엇을 하러 노르웨이를 가냐고 되물으셨다. 이쯤 되니 귀가 팔랑거려 주변의 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살아서 한 번쯤은 가보는 게 좋겠다! 그리고 이왕 가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봐야지!
결심은 했으나 막상 가이드북을 펼치고 정보를 찾아보니 오슬로에서 그나마 가기 쉬운 송네 피요르드는 기차로 6시간(뮈르달까지 4시간 50분, 거기서 환승해서 플롬으로 다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러니 왕복이면 거의 12시간이나 마찬가지인데 1박을 하지 않는다면 너무 여유가 없을 것 같았다. 긴 여정에서 너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서 1박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숙소를 알아봤다. 그것도 늦어서 그나마 가까스로 구한 곳은 호스텔로 1인실 방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식당이 없었고, 취사를 해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구조였다. 낯도 많이 가리는데, 거기서 하이킹 온 남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먹기도 뭐하고 여행 중 이동이 잦아서 취사도구까지 챙겨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차역에서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는데, 내가 거기까지 길을 잃지 않고 찾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나는 여행을 나가면 지도를 보고도 길을 잘 잃어버리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는 편이다. 그런데 사람도 없는 외딴곳에서 캐리어를 끌고 헤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오슬로에 구해놓은 숙소에서는 중간에 하루를 피요르드에서 1박을 하려고 하루치 숙박 요금을 환불받으려면 가기 전에 체크아웃을 했다가 돌아와서 다시 체크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3층이라고는 해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그 건물을 무거운 캐리어를 가지고 몇 번이나 오르내리는 것은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다.
'북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굳이 모두 피요르드를 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 대자연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었고 도시 여행자였던 나는 이런 적당선에서 타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코앞까지 와놓고 안 가는 것도 아쉬울 것 같았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쫄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겁이 많은 편이다. 남들이 흔히 하는 것들 중에서도 무서워서 못하는 게 참 많다. 어렸을 적부터 놀이기구 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높은 곳과 발 밑이 미끄러운 게 싫어서 그 흔한 스키조차도 한 번 타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즐겁다는 데 나는 겁이 나서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게다가 소심하고 생각이 많아서 뭔가 실패하면 오랫동안 맘고생을 한다.
흑역사로 인해 이불킥을 하느라 다리 근육이 발달될 정도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통해 배우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점차 실패를 두려워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시도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그러나 시간은 돌릴 수 없듯이, 그때 잃어버린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도가 늘 100%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최선을 다한다 해도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노력에 상관없이 안 되는 일들도 있곤 하다. 그래서 상처 입고 좌절한다. 그러나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후의 일은 펼치지 않은 페이지에 뭐가 적혀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영원히 미지의 것으로 남는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시도하지 않고 날려버린 기회를 후회하는 것이 가장 힘든 것이 되어버렸다.
겁이 많은 만큼 걱정도 많아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게 될 때마다 앞서 나가서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소한 일을 앞두고도 떨려서 밤에 잠을 못 잔다.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소심해서 고민만 하며 괜히 시도했나 후회할 때도 있다. 그러나 막상 시도한 후에는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는 것을 종종 깨닫곤 한다. 오히려 대부분은 '그래도 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는 자기의 세계인 알을 깨고 나가는 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알을 깨고 나가지 않는다면 새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없다. 오로지 자기의 세계를 깰 용기를 냄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자기를 가둬놓은 틀을 깨고 나갈 때, 그 안전지대를 벗어날 때 인생에서 잊지 못할 멋진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곤 하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월터 미티도 매일 라이프지의 현상실에 박혀서 남이 모험해서 찍은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를 하며 집과 일터만 오가는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마지막호의 표지 사진 필름을 찾기 위해 갑작스레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는 한 번도 어딘가로 떠나본 적이 없었는데 그 필름을 찍은 사진작가를 찾아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등을 돌아다니며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영화 속의 라이프지의 모토를 깨닫는다. (실제 라이프지 모토는 ‘삶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있다(While there’s Life, there’s hope)’와 ‘인생을 보려면 세상을 봐라(To see Life; see the world)’라고 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야 하고, 장벽의 이면을 봐야 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서로를 알아가야 하고, 느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괜히 영화 속 주인공처럼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하는 객기를 부릴 필요는 없다. 대단한 시도는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저 자기를 가로막는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하다 보면 피요르드처럼 멋진 광경을 인생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아가는 존재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변할 것인지 머무를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종종 인생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두렵다고 느끼는 바로 그 뒤 너머에 있다고 느낀다.
결국 나는 오슬로에서 송네 피요르드를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그전에 나는 원래 도시 여행자라 대자연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결정을 하고 나니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계속 마음이 답답해져서 뻥 뚫린 대자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대자연을 마주하면, 왠지 정기라도 받아서 내가 봉착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런 갈까 말까 고민했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피요르드는 과연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