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자, 인어공주를 위하여

알고 보면 다른 의미로 유명한 인어공주

by moka

덴마크를 생각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들 몇 가지는 안데르센과 덴마크 우유, 그리고 덴마크 다이어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칼스버그 맥주 창업자의 아들인 칼 야콥슨(Carl Jacobsen)의 요구로 조각가 에드바르드 에릭센(Edvard Eriksen)에 의해 동상으로 만들어졌다. 칼 야콥센은 당대 유명한 발레리나이며 배우였던 엘렌 프라이스(Ellen Price)에게 모델이 되어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녀는 누드모델은 거부했기에 몸은 조각가의 아내인 엘리네 에릭센(Eline Eriksen)이 모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인어공주상은 덴마크의 국보로 지정되기까지 했으며, 이는 코펜하겐을 들르면 꼭 봐야 할 명물로 알려져 있다. 가서 보면 정말 작은 동상이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별 것 없다며 실망감을 표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거를 보지 않으면 코펜하겐을 방문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덴마크 친구는 정작 인어공주 동상의 본 고장인 덴마크에서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다른 이유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인어공주 동상이 겪는 수난이다. 이 동상은 국보로 지정될 만큼 덴마크를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니만큼 사회의 시선을 끄는 용도로 여러 차례 공공기물 파손의 표적이 되어 지난 1960년대 중반부터 동상은 훼손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 이유도 각양각색인데, 가장 처음 일어난 사건은 1963년 페인트를 뒤집어쓴 것이었다. 페인트를 퍼붓는 일은 이후에도 계속 반복이 되었는데 다른 사건들에 비하면 차라리 양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페인트칠로 시작된 인어공주 동상에 대한 반달리즘은 점차 심화되어 1964년 4월 동상의 머리가 절단되어 도난당하기까지 했다. 이는 1997년 10월 31일 헨리크 브룬이란 조각가가 거짓으로 가득 찬 기성 미술에 저항하기 위해 잘랐으며 항구에 내다 버렸다고 그의 친구인 핀 마르센에 의해 밝혀졌다. 당시 도난당한 머리는 끝내 찾지 못했으며 새로 만들어 붙였다.


그 후 1971년 8월 12일에는 장난꾸러기들이 푸른색으로 동상을 칠했고, 1984년에는 오른 팔이 톱질로 절단되어 없어졌는데 2일 후에 두 청년이 되돌려 보냈다고 한다. 1990년에는 머리를 자르려고 목에 톱질한 자국이 발견되었으며 1998년 1월 6일에 또다시 머리가 완전히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으나 동상의 머리는 얼마 후 TV 방송국 옆에서 발견되었다. 약 한 달 후인 2월 4일에 접합 작업으로 붙여졌다. 2003년 9월 10일에는 반달리스트들이 동상 밑의 틈으로 폭약을 넣어 폭파하는 바람에 날아가 바닷속에 빠졌다.


2004년에는 유럽연합 정상회담 기간에 동상에 검은색 부르카와 ‘EU에 터키가?’라는 띠가 씌워진 일이 있었는데 이는 터키의 EU 가입을 반대하는 저항 운동이었다. 무슬림 의상과 머리 스카프가 동상에 입혀진 것은 2007년 5월에도 일어났는데 덴마크로 이민오는 무슬림 인구수에 대한 반발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2006년 3월에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인어의 손에 남근 모형을 붙이고 그 위에 녹색 페인트를 쏟아부은 후 바위에 3월 8일이라는 낙서까지 써놓았다. (페미니스트의 소행인지 페미니스트에 대한 반발로 인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2007년 3월에는 분홍색 페인트를, 5월에는 붉은색 페인트를 뒤집어쓰는 일을 당했다. 2010년에는 상하이 엑스포를 맞이하여 상하이로 옮겨졌다가 덴마크관을 관리하던 상하이 엑스포 직원들이 동상 위로 기어올라 포즈를 취하거나 다이빙대로 삼고 연못으로 뛰어들고 물을 튀기는 일이 있었다. 2016년에는 인어공주상이 나신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페이스북에 게시되지 못하기도 했었다.


2017년 5월 30일 북대서양에 있는 페로 제도 근처에서 여름철에 이루어지는 참거두 고래에 대한 몰이사냥에 반발하여 인어공주상은 또다시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써야 했다. 발판의 밑바닥에는 “덴마크는 페로 제도의 고래를 보호하라.”라고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것은 2017년 6월 14일 "압둘을 자유롭게 해라(Befri Abdulle, Free Abdulle)"라는 내용으로 파란색과 하얀색 페인트에 뒤덮였다. 이는 36세의 '압둘 아메드(Abdulle Ahmed)'라는 소말리아 난민이 간병인에 대한 폭력 행사로 덴마크 정신 병원에서 10여 년 넘는 시간 동안 수감되어 약을 먹도록 하는 데에 대한 반발이라고 추측하지만 Abdulle의 가족과 지지자들은 인어공주 동상이 피해 입은 것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이후 덴마크에서는 인어공주상 근처에 CCTV를 설치하여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어공주 동상은 유명세 때문인지 몇몇 사례에서는 단순한 반달리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쓸 때만 해도 인어공주가 덴마크를 대표하는 상징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실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당시 덴마크보다도 외국에서 더 인기가 있었다. 본래 배우를 꿈꿨으나 어려운 형편으로 배우의 꿈이 좌절되고 그의 글쓰기 재능을 알아본 선생 덕분에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첫 소설이 성공적으로 알려진 후에 동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본인은 자신의 글을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는 늘 어른을 위한 이야기라고 했으며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아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에 대해서 매우 불만스러워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들은 그의 개인적인 삶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데 ‘눈의 여왕’은 나폴레옹 전쟁과 그에 참전했다가 신경쇠약으로 사망한 아버지를 그린 것이며, ‘성냥팔이 소녀’ 역시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영한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덴마크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외국에서 인정받은 자신을 빗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어공주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안데르센을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그는 양성애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인어공주’는 바로 자신과 친구로 지냈지만 실은 연모의 감정을 가졌던 연하의 남성인 에드워드 콜린(Edvard Collin)과의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데르센은 에드워드를 짝사랑했지만 이성애자였던 그는 안데르센의 고백을 거절하고 곧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렸다. 이후에도 안데르센은 몇몇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결국 독신으로 눈을 감았다.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대신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남겼다.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된 것으로 끝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원작에서는 조금 다르다. 인간만이 영혼을 가질 수 있지만, 인어공주는 죽어서 공기의 요정이 되어 300년을 착하게 잘 지내면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착한 아이들을 찾으면 시험기간이 줄어들 것이고 나쁜 아이를 보게 되면 시험 기간이 하루씩 늘어난다며 끝맺고 있다. 아마 지금쯤은 인어공주도 영혼을 얻지 않았을까?


비록 인어공주 본인은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고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에게도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덴마크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어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 활용되며 갖은 수모를 겪고 있다.


혹자에게는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동적인 여성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지만 나에게 인어공주는 그렇게 부정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에 걸 정도로 열정적이고 타문화에 관심이 많은 호기심 많은 존재, 다소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도전자이다. 돌아올 수 없다는 경고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했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렀다. 어쩌면 젊고 순수했기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자신이 할 수 있는 끝까지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갈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전부를 바치기는커녕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부담이 되는 선택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도전자 인어공주의 도전은 실패한 걸까? 결과에 치중하다 보면 도전할 수 없다.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며 가능성이 없다면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순간이라도 진실한 감정에 솔직하게 자신을 내던졌던 인어공주를 보고 불행하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진정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삶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수명이 300년이라는 인어공주가 자신이 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칼로 찔렀다면 남은 280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반짝이게 하던 이를 죽였다는 상처가 마음에 아로새긴 것처럼 남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이라든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사랑은 시간낭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 순간 그로 인해 행복할 수 있었다면 그것 역시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어공주는 죽음마저 주체적으로 결정한 존재라고 본다. 그렇기에 인어공주는 사랑했던 이에 대한 원망을 품고 눈을 감기보다 마지막까지 그를 향한 사랑으로 신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왕자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모하더라도 자신의 전부를 바칠 줄 알았던 인어공주의 사랑은 결코 헛되다고만 평가할 수는 없다. 사랑은 본인이 하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의 눈에 아무리 하찮고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본인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러니까 괜히 남들 눈치 보며 사랑할 필요 없다. 언제가 끝일지 알 수 없는 한정적인 시간을 사는 존재여, 조금은 무모할 정도로 열심히 사랑하길 바란다. 비단 연인이나 인간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덕질이라도 상관없다. 인생은 무언가를 사랑해서 행복했던 기억으로 채우는 게 최고가 아닌가 싶다.


인어공주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영혼이 되어 이 사태를 지켜볼 안데르센이나 인어공주나 아니면 이들을 아끼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인어공주 동상이 더는 수모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래 인어공주상이 아닌 블랙 다이아몬드 도서관 앞의 인어공주상


*인어공주 동상의 훼손에 관한 것은

The Little Mermaid (Den Lille Havfrue) (Statue), (2016.07.10 ) (https://www.danishnet.com/travel-denmark/little-mermaid/)

There once was a little statue … only she isn’t so little anymore, (CPH post online) (http://cphpost.dk/history/there-once-was-a-little-statue-only-she-isnt-so-little-anymore.html)

"Little Mermaid: Copenhagen statue a target for vandals" (BBC, 2017.06.15)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0293396)

The Little Mermaid (statue)(enwikipidia) (https://en.wikipedia.org/wiki/The_Little_Mermaid_(statue)

김인영 님의 사이트 부록의 제5부 인어 조각상들에 얽힌 이야기들과 반달리즘(http://fishillust.com/Legend_of_Mermaid_5)

디자인 프레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esignpress2016&logNo=221020191437&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네이버 라이브러리, 덴마크 일간지 POLITIKEN를 참조했습니다.


**안데르센의 인생에 대해서는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열등감과의 처절한 싸움으로 점철했던 안데르센을 위한 변명(박정희, 2017.01.31. 오마이뉴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나무 위키)

백조 알에서 나왔다면 오리 틈서 태어난 건 중요치 않다(김환영, 중앙선데이, 2011.06.11)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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