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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Aug 17. 2018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플롬에서 홀로 밀크셰이크를 마시며 느끼는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

사실 노르웨이에 대한 첫인상은 오슬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 캐리어를 분실하느라 그리 좋지 않았다. 덕분에 덴마크에서 받은 좋은 기운까지 모두 다 써버린 것처럼 노르웨이는 첫날부터 지쳐버렸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다음 날인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가며 차창밖으로 보이는 피요르드의 정경을 보니 그런 것들이 모두 쓸려내려 갔다.  


뮈르달을 거쳐 마침내 플롬에 도착해 거대한 자연을 마주한 순간, 나의 문제는 그 거대한 자연 앞에 한낱 티끌처럼 작게 느껴졌다. 산의 모습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는 호수의 맑은 물은 나의 마음에 응어리진 감정의 찌꺼기들을 녹여 쓸어내렸다. 당일치기로 갔다 오는 거라 돌아가는 기차까지는 3시간 남짓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왕복 12시간이 걸리는 곳에 3시간밖에 머무를 수 없다니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하는 수 없이 페리 투어를 포기하고 나는 플롬의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혼자 밀크셰이크를 마시며 대자연을 바라보았다. 혼자서 외로울 것 같았지만 자연이 주는 어떤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위안 덕분인지 나는 그저 평온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북유럽의 정경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도 내게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 그런 혼자의 시간을 나는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사람에게 곧잘 지치곤 한다. 좋아하니까 잘해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지만 많은 경우에 주는 것만큼 돌려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지기도 한다. 혹은 서로 달라서,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든 간에 의도치 않게 서로 상처 주는 경우가 있다. 머리로는 그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혹은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탓하기 애매한 경우도 있다. 상대방에게 그걸 말하는 게 그럴 때 그저 거리를 두려고 한다. 좀 더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고 대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나는 가끔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동굴에 들어간 것처럼. 책을 읽든지 영화를 보든지 여행을 가든지 아니면 음악을 들으며 산책이라도 한다. 그러고 나면 조금씩 기운이 회복된다.


대학 때, 어학연수를 한 학기 동안 갔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방을 혼자 썼는데 밤에 다른 사람들이 한인타운이나 어디를 놀러 가자고 해도 나는 대부분 홀로 방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밤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았다. 혼자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냥 조용히 방에 있는 게 나에게는 충전의 방법이었다. 그 이전부터 늘 그래 왔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물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내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카모메 식당’의 감독이 만든 ‘안경’이라는 영화에서는 어느 조용한 해변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홀로 사색을 한다. 그곳은 별다른 유명한 것도 없는데 모두들 거기에 모여들자 주인공은 신기해한다. 처음엔 사색하기의 맛을 몰랐던 그녀도 나중에는 빠져들어 다음 해 또 찾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혼자서 보내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밤에 혼자 잠깐씩이라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지친 하루의 일상에서 돌아와 나 자신을 추스르고 하루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 자기를 돌볼 수 있을 때 남과도 잘 지낼 수 있다. 그렇게 혼자 충전을 하고 나면 다시 누군가가 만나고 싶어 진다. 혼자만의 시간은 영원히 혼자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정스님도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언급한 것처럼 홀로 있음은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고독'이 되어야 하지 관계가 끊긴 '고립'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플롬의 한 카페에 앉아 홀로 밀크셰이크를 마시며 멍 때리고 있으니 나를 괴롭히던 모든 잡념들이 사라졌다. 마음이 정화된 느낌이랄까? 나는 그야말로 평온함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여행 중 최고의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피요르드다! 가지 않았다면 정말 친구처럼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렇게 피요르드는 내가 안 가려던 곳에서 내가 북유럽 여행에서 가장 추천하는 곳이 되었다.


여행 전 마지막까지 갈까 말까 고민했던 송네 피요르드, 신비롭게 아름다워 안 다녀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꼭 다녀오라고 설득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자연의 경외할만한 아름다움을 한낱 인간인 나로서는 형용할 수가 없어 설명이 다 안 되는 것이 아쉽다. 시간이 없어서 고대했던 페리 투어는 못해서 아쉽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두기로. 그래야 다음에 또 올 구실이 생기니까!




 

플롬에서 한 거라고는 산책과 피요르드 정경을 바라보며 밀크셰이크를 마신 것밖에 없지만 여행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물가에서 여유로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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