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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Sep 07. 2018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북유럽 인테리어의 세계

덴마크 건축가 핀 율(Finn Juhl) 하우스 인테리어 탐방기

노르웨이 오슬로의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중년에 접어드는 활동적인 싱글 여성이었는데, 집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내가 있는 동안 내내 집 꾸미는 작업을 하며 나에게 그것을 보여주곤 했다.  그 집에 산지는 오래되었지만, 집주인에게서 집을 구입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집을 안 꾸미다가 이제야 다 뜯어고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무슨 색으로 문을 페인트 칠할까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며 그녀는 부엌의 타일부터 시작해서 가전제품을 자기가 직접 다 조립했다고 했다. 그리고 집안 인테리어의 대부분은 IKEA에서 사 온 것이라고 했다. 북유럽은 인건비가 비싸고 뭐가 고장 나서 고치려고 해도 엄청 오래 걸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테리어를 비롯해 집안 수리 등을 직접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편이다.


북유럽 인테리어의 핵심은 역시 깔끔하면서도 오래 머무르기 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도 북유럽 인테리어 붐이 분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다. 북유럽은 일 년 중 얼마 안 되는 기간인 여름에는 해가 길지만 그 외에는 고문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햇빛이 적다. 겨울에는 해가 10시쯤 어슴푸레하게 떠서 3시 정도면 깜깜해진다고 한다. 게다가 노르웨이에는 산에 가려서 아예 1년 내내 해가 안 드는 마을도 있다니 그들에게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길고 중요한 지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아직 여름이라 해가 길었지만 여름이 지나고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북유럽은 햇빛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혹독한 긴 겨울의 얼굴을 드러낸다. 답답하게 하늘을 메운 구름과 언제 쏟아질지 모르고 쏟아져도 우산을 쓰기 애매하게 침 뱉는 것처럼 내리는 비는 북유럽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여름을 기다리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쐬기 위해서 창문들이 큰 편이고 내부는 바깥이 어두운 만큼 밝게 장식하곤 한다.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바른 벽은 바깥이 어두워도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 동안은 밝고 넓은 느낌이 들게 한다.


사실 나는 인테리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처음 북유럽에 다녀온 이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으로 북유럽 여행을 갔을 때, 머무는 집들은 대부분 북유럽 인테리어 스타일을 공유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머무르는 데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었다. 나무가 많이 나는 곳이니 어려서부터 목공예를 하며 직접 원목 가구들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이런 북유럽의 전통이 오늘날 IKEA가 있을 수 있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유럽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 집의 모든 것을 만드는 건 아니다. 물가가 비싸서인지 외식보다는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하고 생활 및 사교의 핵심이 '집'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만큼 집에 투자를 많이 한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 은은한 조명에도 투자를 많이 하고, 다른 데에는 사치를 부리지 않아도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좋은 가구에 투자하기도 한다.


쨍한 형광등에 익숙했던 나는 북유럽 에어비앤비에 들어섰을 때 노랗게 주변을 밝히는 은은한 램프 조명이 낯설고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노트북으로 뭔 작업을 하려고 해도 딱 잠자기 좋은 느낌만 뿜어대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들에게 집이란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쉼'의 공간이다. 물론 북유럽 인테리어는 일하는 공간도 삭막하지 않고 기분 좋게 쾌적한 스타일이지만.


작년 10월, 두 번째로 덴마크 코펜하겐에 여행을 갔다가 첫 여행 때는 못 갔던 핀 율 하우스(핀 율의 생가)를 방문했다. 핀 율 하우스는 코펜하겐에서 30-40분은 기차를 타고 가야 나오는 곳에 있는데, 비가 오는 데도 주말만 문을 열어서 꾸역꾸역 찾아갔다. 초겨울 날씨에 코트를 입고 낯선 곳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내가 이렇게까지 여길 가야 하나?' 싶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핀 율 하우스는 내 꿈의 집이었다. 궂은 날씨였지만 집 안에 들어가니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건축가이자 덴마크 최초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 가구 디자이너였던 핀 율의 명성을 고려해봤을 때 화려할 것을 예상했지만, 웬걸, 어느 하나 과하지 않고 깔끔한 게 어디 있으나 그냥 내 집처럼 편안하고 기분 좋았다. 그가 직접 디자인한 집은 어느 방에서건 바깥의 초록 초록한 정원이 보이는 커다란 창이 있었고, 실내는 그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에 은은한 조명이 편안한 느낌을 자아냈다. 언제까지고 머무르고 싶은 느낌을 억누르며 가까스로 나왔다.  


나이가 들면서 한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다. 그러면서 머무는 시간이 긴 공간에서 편안하게 있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겨울에는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집과 내가 머무는 주된 공간을 아늑하게 잘 꾸며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새로 사무실을 옮기게 되었을 때, 아무것도 없이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삭막했던 공간에 식물을 비롯해 쿠션과 엽서, 디퓨저 등을 가져다 놓으니 왠지 거기서 머무는 시간이 덜 괴롭게 느껴졌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 거기서 머무는 시간이 그나마 조금 더 즐거워졌고 나는 이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의식주 중에서 '주'의 중요함을 잊고 당연하다고 느끼며 살곤 했다.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 것, 나를 담고 있는 공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예쁜 것을 좋아해서 화려한 것도 좋아하는데, 갈수록 '편안함'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오래 머무르기 위해서는 단순히 예쁜 것보다는 편안해야 한다는 것, 사람이든 공간이든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매력은 과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편안함이 아닐까 싶다.




  



*내부 사진은 관리인 분의 허락을 맡고 찍은 사진이나, 저작권 침해 방지를 위해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핀 율 하우스 공식 사이트 (https://ordrupgaard.dk/en/finn-juhls-house/)에서 내부 인테리어 사진 (https://ordrupgaard.dk/en/portfolio_page/architecture/)을 보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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