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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Sep 28. 2018

유모차와 아빠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해방된 성 평등의 세계

북유럽의 남자들은 모델 같지만 다른 나라에서 방문한 여자들이 기대하는 매너를 갖추지 않았기에 실망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유럽이나 다른 지역과 같이 여자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거나 하는 것은 그들에겐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도와줄 줄 모르는 냉혈한이라기보다는 동등한 인간으로 여자가 알아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무턱대고 와서 ‘함부로’ 도와주는 게 여성을 무시하는 걸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상은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고. 만약 어려움이 있어서 도움을 청한다면 그들은 흔쾌히 도와줄 것이다.


작년 가을, 덴마크를 다시 방문했을 때 긴 여정이라 큰 트렁크를 갖고 갔었는데, 트렁크가 엎어져서 허덕이는 나를 보자 한 아저씨께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Yes, please help me.”라고 대답하자 그분은 재빨리 와서 도와주셨다.


북유럽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이라든가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 인력은 소중하다. 성별에 상관없이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전업주부라는 개념이 없다.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도 없지 않나 싶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남편 혼자 부담스러운 가장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 여자들은 육아휴직 후 경력 단절 없이 계속 맞벌이로 일을 하고 또 남성들도 공동육아를 하며 육아휴직을 쓰는 게 보편적이라 평일 낮에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빠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성과 상관없이 모든 권한과 의무가 함께 간다. 데이트를 할 때도 개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각자 몫을 각각 더치페이로 계산하는 경우가 흔하며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주로 재료를 사 와서 같이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다고 한다.


이런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에서 벗어난 것은 비단 경제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격적인 면에서의 성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 문화에서는 한국과 같이 애교를 부리는 여자도, 마초 같은 남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주도권을 쥐고 데이트를 신청하는 여자와 섬세한 남자, 어찌 보면 익숙지 않아 조금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같이 특정성별의 틀 안에 가두고 행동이라든가 생각 등을 제한하려는 인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남자도 여자도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 중에 ‘오드리 토투’가 나오는 ‘시작은 키스’라는 영화가 있다. 이는 감독인 ‘다비드 포앙키노스’가 쓴 동명의 프랑스 소설 ‘시작은 키스’를 원작으로 한 건데,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오랫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여자 나탈리가 그녀의 스웨덴인 부하 직원 마르퀴스와 우연히 키스를 하게 되면서 다시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하게 된다. 여기서 나오는 스웨덴 남자 마르퀴스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엘프 같은 북유럽 남자가 아니라 덩치가 크고 약간 우둔해 보이는 인상의 인물이다(여담이지만, 실제로 이를 연기한 사람은 프랑스 배우 ‘프랑소아 다미앙’이다). 그래서 누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나탈리가 마르퀴스를 만나자 남편이 살아있던 시절부터 그녀를 짝사랑해왔던 사장을 비롯해 주변의 친구들마저 그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런데 나탈리는 그 이유가 ‘섬세함 delicacy'이라고 대답한다. 같이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 각자 떨어진 소파에 앉아 각자의 자리에서 손을 잡고 자는 남자. 어렸을 적 먹던 사탕을 선물로 주는 남자. 보다 보면 투박한 외면을 뚫고 나오는 섬세하고 순수한 소년 같은 사랑스러움이 느껴진다.


여자에 대한 행동양식을 규제하는 인식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된다’와 같은 것은 오히려 남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억제함으로써 정신건강이라든가 이런 측면에서 더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느끼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막으면 표현의 욕구가 해소되지 못하고 인간답지 못한 모습으로 부자연스럽게 변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한국의 경우, 많은 복잡한 현실적인 제약들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손으로 어쩔 수 없는 외부적인 조건들로 당장 바꾸기 어려운 것들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성별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이 어떤 사람을 특정 성별로 판단하기 이전에 그저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존중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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