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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Oct 12. 2018

‘무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토베 얀손의 철학

나는 생각이 많아 이런저런 일들로 고민을 하느라 밤이 깊도록 잠이 쉬이 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마음이 복작거릴 때는 조용히 책을 읽으며 거기에 집중하려고 한다. 특히 동화를 읽고 나면 상처 난 마음에 마데카솔이라도 발라주듯 부들부들해져서 기분이 좋다.


요즘 즐겨 읽는 것은 핀란드의 국민 작가인 토베 얀손의 무민 시리즈다. 십여 년 전 ‘무민’ 시리즈를 8권을 사놓고 안 보고 있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슬금슬금 꺼내 보다 이제 마지막 권을 읽고 있다. ‘무민’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와 상당히 다른 관점의 이야기들이 많아서 종종 놀라곤 했다. 무민이 나온 지 거의 7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미 그 당시에 일찍이 ‘부부’라도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거나 무민이 혼자 나와서 사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보면 이혼율이 높은 것이나 개인주의 문화 등 워낙 우리와 다른 환경이라 그런지 몰라도 뭔가 낯설다. 언제나 무민의 편을 들어줄 것만 같은 무민 엄마도 무민이 보이지 않는 아이를 놀리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냉정하게 혼내준다. 매는 들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냉정하게 말로 나무라는 스타일이 북유럽식 교육인가 싶다. 


아무튼 ‘무민’ 이야기 속에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토베 얀손의 철학이 있다. 바로 온전히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 즉 ‘나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토베 얀손은 ‘누구나 다른 이를 너무 존경한다면 그는 결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핀란드로 이민 간 스웨덴 부모-촉망받던 조각가인 아버지와 핀란드 최초의 전문 우표 디자이너인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란 토베는 과연 그녀가 주장한 것처럼 본인이 주인이 되어 여러 가지 영역(일러스트, 회화, 만화, 소설, 무대 의상 디자인 등)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독보적인 삶을 살았다.


얼핏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다움을 인정하고 그 자신으로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기 때는 몸을 뒤집기만 해도 칭찬을 받았던 사람들이 커가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엄친아’ 등과 비교당하며, 무언가 대단한 게 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우리 삶에는 늘 ‘청소년이 읽어야 할 100가지 책’이라든가 ‘20대가 해야 할 100가지’, ‘30대가 해야 할 100가지’ 등이 넘치도록 가득하다. 우리는 종종 ‘내가 아닌, 더 나은, 자기 능력 이상의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요구받고 그것이 되느라고 정작 우리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는 생각지도 않고 앞만 보고 달리듯 살아가는 것 같다.


몇 해 전 ‘4등’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수영을 좋아하고 잘하지만 늘 대회에 나가면 3등도 아닌 4등을 하는 아이, 그리고 1등에 집착하는 엄마. 아이의 대회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코치는 체벌을 한다. 코치 역시 체벌로 피해를 보고 수영을 그만둔 전력이 있다. 결과적으로 애는 수영 성적은 올랐지만 즐기지 못하게 되었고 아이는 결국 코치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다. 수영을 그만둔다 했지만 아이는 수영을 포기하지 못하고 새벽에 몰래 수영장에 갔다가 끌려 나온다. 아이는 그저 수영을 하는 게 즐거웠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1등을 하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메달을 휩쓸어 간 노르웨이는 어렸을 때 기록을 재지 않는다고 한다. 경쟁은 운동을 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아이들이 운동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동기부여보다는 무조건적으로 학생의 의무라는 식의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공부 외의 다른 재능을 꽃피우기 힘든 환경은 결과적으로 자기 다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박탈한다. 인생의 길은 한 가지가 아닌데 여러 가지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 


토베는 죽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해봐서 여한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나는 자문해본다.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까? 성인이 된 지금도 남의눈을 의식하고 사느라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자유롭지 못하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며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을 눈치 보며 살다가 죽을 때 후회를 한다. 우리가 늘 우리 자신으로 진실되게 살 수 있다면, 적어도 죽을 때 한 가지 후회는 덜 하지 않을까 싶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무민 박물관(?) 겸 작은 놀이공원 유니바켄


Moomin이 mumin으로 써있으니 왠지 짝퉁 같아 보이는 느낌이지만 엄연히 공식적으로 지정된 장소.


길이 하나만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사이 골목이 많다. 인생도 마찬가지. 길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하나만 생각하고 좌절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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