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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Sep 21. 2018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고도 가장 우울한 사람들

우울증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행복한 북유럽 사람들에 대해서 항상 꼬리표로 따라붙는 것은 ‘우울증’이다. 아무리 복지가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북유럽에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 환경적으로 해가 짧고 겨울이 길어 비타민 D 부족에서 오는 것과 개인주의로 인한 고립된 생활양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마음의 감기라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대부분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며 홀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보고되는 북유럽도 고질적인 계절성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핀란드는 이들 국가들 중 가장 북단으로 1990년대에는 한 가정당 한 사람이 자살한다고 할 정도로 자살률이 높았다. OECD 평균 자살률의 두 배를 기록하던 그들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로 이제 OECD 평균의 바로 밑까지 내려왔다.  


이들은 기상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햇빛 대신 램프를 이용한 치료를 하기도 했고, 적극적인 심리치료 등을 도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그저 ‘인간’이라는 것에 집중해 자연스럽게 그들의 감정을 내보일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우울증 경험 수기를 바탕으로 한 일본 영화인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에서는 우울증을 겪는 남편과 그를 돌보는 만화가 아내가 나온다. 완벽주의자에 꼼꼼한 성격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내는 일을 그만두고 치료에 집중하라고 한다.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을 때 남편의 형이 방문해서 동생을 보고 힘을 북돋워주지는 못할 망정 그에게 가장의 책임을 다 못하고 있다며 우울증 환자를 더 괴롭게 만든다. 우울증을 겪는 남편은 형의 방문 후에 그의 말에 몹시 괴로워한다. 경험하지 않아 잘 모른다고 해도 곁에서 함께 있어주는 것, 도와주려는 따뜻한 마음은 전해진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타인의 잘 알지 못하는 아픔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있는 것이 낫다.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에서는 아내가 옆에서 계속 자기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고 괴로워하는 남편을 다독이고 위로해준다. 그리고 본인도 남편의 병으로 인해 힘들어하며 ‘억지로 힘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불행한 사건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의 무신경함이 상심에 빠져있는 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평가한다. 자신이 경험하거나 아는 것에 한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기에 가끔씩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상처 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고, 설령 같은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개개인이 느끼는 느낌과 그 정도는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같은 일을 겪고도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약자에게 상대적으로 박하다. 좀 더 섬세한 사람에게 다소 부정적인 어감의  ‘예민하다’는 틀을 씌우고 평가한다. 종종 “네가 예민한 것 같은데?”라든가 “예민하게 굴지 마.” 라며 피곤한 사람 취급하면서 오히려 그들이 불편함을 표출하지 못하도록 몰아세운다. 가령 요즘 유행하는 ‘프로 불편러’라는 말 역시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군가는 다른 시선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강하게 이겨낼 수 있는 잡초 같은 사람을 원하고 칭송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만의 약한 면이 있다. 누구든 자기만의 지옥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 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치유되지 못한 아픔은 곪아서 더 큰 병을 야기시키며 언젠가 터져버린다.  


게다가 한국은 심리 상담 등 정신과 치료 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기 위해 편하게 전문가를 찾지 못하고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체만큼이나 정신 역시 관리가 필요하다. 감기가 걸리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을 받듯이 정신적인 면에서도 아플 때 그런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백혈병이나 암 같은 신체적인 병뿐만이 아니라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면 역시 그런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BBC 뉴스의 코리아 섹션에 ‘서늘한 여름밤에 내가 느낀 심리학 썰’이라는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 서밤(이하 ‘서밤’)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성인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으로 아픈데 막상 그 사람에게 상담을 권유하면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며 정색을 하거나 아니면 책만 읽다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감기 걸렸을 때 내과 가는 것만큼이나 동네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야 한다. 지역에 있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을 그는 추천하고 있다.


한편 병원에 가는 것 말고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스웨덴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오베라는 남자’에서는 사랑하는 아내를 사별하고 해고까지 당한 후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려고 하는 중년 남자 오베와 그의 이웃들이 나온다. 그의 이웃들은 그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서로를 돕게 되고, 그와 친구가 되면서 그가 툴툴거리는 게 사실은 외롭고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친구가 되기를 바랐을 때 그는 비로소 그의 껍질을 벗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북유럽 사람들은 인구도 적고, 개인주의가 강해 다들 고립된 생활을 하지만 소수의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런 사회적 지지 관계의 형성은 사람이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그 고통으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 회복탄력성을 향상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다. 상처로부터 다시 일어나기 위해 회복탄력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가족 같이 가까운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구축하여 서로 의지하는 게 좋다. 프로이트는 표현되지 않은 감정들은 우리 안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억압하면 이상하게 표출된다고 한다. 그러니 자신의 상처를 내보일 수 있는 사람과 만나 상처를 나누라. 상처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병들지 않는다.


 




참고문헌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것

- 책: 우울을 지나는 법 (매트 헤이그 저, 강수희 역, 책 읽는 수요일, 2018.04.25)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2011) (2006년 출시된 호소카와 덴텐의 만화가 원작. 2009년 텔레비전 드라마 버전이 있음)

- '오베라는 남자'(2016) (프리드릭 배크만의 동명의 소설(2012) 원작)  



정신 장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낙인에 대한 부분은 

-정신 장애인의 낙인(stigma) 경험 (현명선 ·김영희 ·강희선·남경아, 대한간호학회지 제42권 제2호, 2012년 4월) 참조 

- "정신병 치료" 낙인 두려워 병 키우는 한국인들 (윤나라 기자, SBS 뉴스, 2015.11.18)(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74235&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 겪어… ‘위험한 병’ 낙인부터 지워야  (권대익, 한겨레. 2018.09.10)(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9051607775563


- 웹툰 작가 서밤: "이 고통은 죽음이 아니라 살면서도 끝낼 수 있다" (BBC NEWS Korea, 2017년 11월 1일) https://www.bbc.com/korean/features-41548743


핀란드의 자살률 저하 자료는 

Finland: from suicide hotspot to world's happiest country   (SAM KINGSLEY, AGENCE FRANCE-PRESSE, Vantaa, Finland  /  Sat, April 13, 2019) (https://www.thejakartapost.com/life/2019/04/13/finland-from-suicide-hotspot-to-worlds-happiest-country.html)를 참조했습니다. 


북유럽 우울증 대처방안 부분은 

세계가 주목하는 핀란드의 자살예방법 "인생은 살 만해요" (김성휘 기자, 중앙일보, 2015.10.12) (https://news.joins.com/article/18837178)


가을철 햇볕, 우울증 막는 보약?  (YTN, 2015.09.09)(https://www.ytn.co.kr/_ln/0105_201509091602027889)


- How Countries with the Shortest Days Beat Seasonal Depression   (Lauren Bettenga, Jan. 09, 2018) (https://www.thehealthy.com/mental-health/depression/scandinavian-seasonal-de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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