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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Oct 19. 2018

서로의 행복을 지켜주는, 저녁이 되면 한산해지는 동네

저녁이 있는 삶의 비결; 타인과 나의 행복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기

북유럽에서의 생활은 어찌 보면 한국의 생활에 비해서는 심심할 정도. 주말이나 저녁 6시가 되면 상점이 다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기에 딱히 어디를 갈 데가 없다. 저녁과 주말에는 가족들과 집에서 오붓하게 보내는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한국에 24시간 하는 카페나 상점이 있다는 게 더 신기할 거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게 홀로 온 여행자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핀란드의 헬싱키를 갔을 때, 안 그래도 사람 수도 많지 않은데 저녁 6시가 되니 길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인다. 일요일에는 백화점을 비롯한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인데 여기는 그게 당연하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지만, 일 때문에 개인의 삶을 희생하지는 않는다. 모두의 개인적 삶이 여유롭게 존중되어야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면, 그만큼 사회에 불만을 품고 발생하는 범죄 등이 줄어들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고치거나 인터넷 등을 설치하는 것도 유럽에서는 전반적으로 오래 걸린다. 한국은 뭐든지 빨라서 참 좋은데, 내가 뭔가 빨리 서비스를 편하게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 잠을 줄이고, 쉬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급하게 일해야 한다. 폭염이 심했던 여름에는 에어컨 설치 기사님들이 그 더운 여름날에 쉬지도 못하고 땡볕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느라 더위를 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는 분들은 폭우가 내려도 위험을 무릅쓰고 배달을 해야 한다. 집 근처의 대형마트는 주말에도 밤 11시까지 열려 있으며 직원들은 거의 하루 종일 의자에도 제대로 앉지 못하고 서 있는다.


나는 인터넷 쇼핑을 좋아해서 택배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어쩔 때는 밤 11시에도 배달이 온 적이 있었다. 빨리 온 것은 좋았지만 그렇게 급한 것은 아니었는데 택배 기사님이 그 시간까지 일하신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죄송스러워 마음이 불편했다. 잠깐 나가는 동안에 못 기다리고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고 하시거나 집에 있는데도 1층에 물건만 놓고 가시거나 했을 때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들에게는 엄청난 양의 물량을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하기 위해서는 그 잠깐의 여유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당연하게 그들에게 여유롭기를 요구한 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스웨덴에서 공항버스 티켓 발권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마구 누르다가 결국 10장이 뽑힌 일이 있었다. 약 30만 원어치가 뽑혔는데 이게 이미 계산이 된 거라며 영수증과 사유서를 써서 편지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30만 원이 내게 적은 돈은 아니었기에 여행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한 달 정도만에 일이 해결이 되었다. 일처리가 한국만큼 빠르지 않은 것은 북유럽뿐만이 아니라 유럽, 아니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겪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는 덕분에 비록 나는 속이 터질 것 같더라도 처리하는 쪽에서는 실수가 줄어든다(이것을 완전히 일반화하기는 그렇지만).


대학교 때,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는 슈퍼에서 계산을 할 때도 계산대의 직원이 옆의 계산대 직원과 계속 수다를 떠느라 엄청 오래 걸리곤 했었다. 처음에는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싶어서 황당했는데 거기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사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인간으로서 살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서로 느려도 이해를 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였으면 왜 빨리빨리 안 해주냐고 짜증을 내고 그러면 또 서로 기분이 상해서 고성이 오가거나 어쨌든 시끄러웠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다음에 슈퍼를 가니 정말 사람들은 세월아 네월아 평화롭게 기다렸다. 나도 거기서는 급할 게 없어서 그렇게 기다리는 게 막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빨리 다음 사람을 위해 비켜야 한다는 눈치가 보이지 않았고, 직원과 손님 사이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대화도 오가며 정겨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예외적으로 늦게까지 열거나 주말에도 여는 곳이 있긴 했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주말이나 저녁이 되기 전에 미리 사고 그러는 게 익숙해졌다. 북유럽에 가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딱히 갈 데가 없어서 일찍 숙소에 돌아와야 했지만,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또 중요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더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여유로워야 남을 쪼지 않고, 스트레스가 줄어들어야 사람 간의 갈등이 줄어든다. 그리고 사회에서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결국 사회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과 사고들이 줄어든다. 시간에 쪼이지 않으니까 일을 좀 더 꼼꼼히 할 수 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그 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아도 된다.


'5분 빨리 가려다 50년 빨리 간다.'는 표어처럼 급히 무언가를 처리하려고 빨리 뭘 하려고 하다가 사고가 나거나 문제가 생기곤 한다. '느림의 미학'이 있는 충청도에서는 '그렇게 빨리 가야 하면 어제 출발하지 그랬슈?'라는 표어가 있다고 한다. 물론 시간에 끼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지만. 그러고 보면 요새 '시간 빈곤'이라는 말이 있던데 '곳간이 차야 인심이 난다'는 말처럼 조금 더 여유가 있어야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것 같다.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나 이야기도 바쁠 때는 왠지 마음이 더 각박해지고 짜증이 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서 여유가 생기면 그때 지나간 게 왠지 미안해진다. 하지만 계속 바쁘면 남을 챙길 여유 따위는 아예 사라진다. 


좋아하는 동화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는 시간 도둑이 나온다. 시간 도둑인 회색 신사들이 도시 사람들에게 자기들은 시간 저축은행에서 나왔다고 하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저축을 종용한다. 그들에게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꿈'을 등한시하며 표정도 없어지고 즐기지도 못하게 된다. 동시에 시간이 없다며 서로를 찾아가지도 않고, 남에게도 무관심해진다. 이거야말로 바쁜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


바쁘지 않은 때에 여유로운 상점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면 친근하고 더 가까운 기분이 든다. 옛날에는 모르는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게 참 불편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아줌마처럼 변하는 것인지 자꾸 모르는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고 도와주고 싶고, 오지랖을 부리고 싶어 지곤 한다. 잘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때, 기계처럼 무표정하던 사람들이 표정을 되찾고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내 안에서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단순히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사람과 구매하고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걸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연결된 느낌이 드는 게 기분이 좋다. 특히, 슈퍼 계산대의 중년의 아주머니 직원분들께서 해주시는 따뜻한 일상의 조언이 참 쏠쏠하고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이야기 나누는 게 참 좋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은 우리와도 연관되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어떻게든 서로 영향받는다. 빠름도, 편리함도 좋지만 우리 사회가 모두에게 편해지기 위해서는 조금 더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을 먹고 7시인가 8시인가 스톡홀름의 거리는 적막하기 그지 없다


원래도 사람이 별로 없지만 6시가 되면 개미새끼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헬싱키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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