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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Nov 09. 2018

조깅 후, 맥주 한 모금-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 라이프스타일, 휘게 Hygge

최근 ‘소확행’이라는 말이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다. 소확행의 뜻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한다. 크거나 대단하지 않지만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 이를 처음 접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의 에세이였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중 안 읽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의 글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에세이다. 얼핏 보면 살짝 얼빠진 듯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마음에 와 닿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 특유의 해학과 성찰, 그리고 예리한 관찰력 또한 좋아한다. 소설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의 생각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 역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2017년 가을, 덴마크에 다시 갔을 때 나는 이 동명의 에세이집을 가지고 갔었다. 평소에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행을 다닐 때는 특히 비행기 안에서나 잠들기 전에 읽기 쉽도록 짤막한 글들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하루키의 에세이는 왠지 여행 중에 읽으면 느긋함을 가중시켜주는 매력이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이 에세이 집에는 크지는 않지만 행복을 느끼게 하는 그의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같은 게 담겨 있다. 좋아하는 레코드를 중고 레코드샵에서 구하며 기뻐하는 그의 모습은 소탈하다 못해 귀엽게 느껴진다.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에 행복감을 느끼는 그의 이야기는 여느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그는 조깅 후의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산뜻하게 즐기기 위해서 금욕적인 자기만의 룰을 만든다. 돈에 즐거움이 좌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규칙을 제법 엄격하게 고수한다.


그가 말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삶의 대부분의 날들은 어떠한 큰 사건 없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이루어진다. 큰일이 안 생기면 다행이긴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권태’와 ‘매너리즘’에 빠져들게 되곤 한다.


누가 그랬나 바쁜 것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지만 권태는 사람을 죽인다고, 그만큼 인간에게 권태란 무서운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라는 소설에서는 매일이 반복되는 권태로운 삶을 사는 한 젊은 부인이 기존의 권태로운 자기 삶을 벗어나 열정을 다시 찾기 위해 일탈을 꿈꾼다.


대부분 우리의 인생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매일, 매 순간이 흥미롭고 짜릿하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일상의 틀 안에서 반복적인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가끔은 지루하다고 느낄 때 취미생활을 하는 등 크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을 찾는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하루키의 말마따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


로또 당첨이라든가 벼락부자가 되는 것들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행복해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런 커다란 행운을 일상에서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보다 작지만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낀다면, 삶은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래서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기 쉽다.


이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바로 덴마크인들이 말하는 ‘휘게 Hygge’ 라이프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휘게는 ‘웰빙’을 뜻하는 노르웨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늑한’이라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이는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서 정적인 안정감, 안락한 분위기, 함께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과의 친밀감 등을 그 안에 담고 있다. '휘게'라는 말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자족할 줄 아는 삶'을 뜻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새것보다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을 추구한다. 덴마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말레네 뤼달'의 '덴마크 사람들처럼'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선물도 양말, 내복 등이 가장 인기라고 하니 그들에게 휘게란 무슨 의미인지 와 닿으려나? 혹시 몰라서 휘게 라이프를 위한 10 계명을 적어봤다.


     <휘게 10 계명>


1. 조명을 조금 어둡게 해 분위기를 편안하고 아늑하게 바꾼다.

2. 휴대전화를 끄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3. 커피, 초콜릿, 쿠키, 케이크, 사탕  달콤한 것을 먹는다.

4. ‘나’ 보다는 ‘우리’가 되어 같이 TV를 보든 뭔가를 함께한다.

5.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행복을 즐긴다.

6. 자기 자랑과 과시를 하지 않고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7.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8. 정치 이야기 등 감정 소모되는 이야기는 나중에 얘기한다.

9.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10. 당신의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평화를 누린다.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 참조


어때요, 휘게 라이프 별 거 없죠? 참 쉽죠잉? 이게 덴마크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휘게 라이프', 덴마크 사람들이 주야장천 말하는 '휘게'의 실체. 여러분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여름에 에어컨 켜고 이불 덮고 있기, 겨울에 따뜻한 온돌 바닥에 드러누워 군고구마나 귤 까먹기 뭐 그런 거 아닐까? 아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그들이 추구하는 휘게란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누구나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까운 사람들과 모여서 식사하는 것, 맥주 한 잔 하는 것, 촛불을 켜고 저녁 식사를 하는 것.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기쁨. 그런 작은 것들에서 자주 행복을 찾는 그들은 그래서 본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자부한다.


특히, 덴마크 사람들은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고 의미 있는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버드대가 75년간 268명을 추적해서 연구한 '행복의 비결'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돈이나 성공이 아니라 (물론 돈이 없으면 행복해지기는 힘들지만!)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라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한국에서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오히려 이런 것들에 소홀해지지 않았나 싶다. 가까우니까 이해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챙기기보다 이해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큰일이 있을 때 우리의 삶에서 가장 의지할 것은 역시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돈은 당연히 생활을 위해 필요한 거지만 돈은 사람을 안아줄 수 없지 않은가.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망처럼 자기를 잡아주는 사람들, 물심양면까지는 안 되더라도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이들과의 관계를 형성해놓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인간의 삶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롤러코스터 같다고 생각한다. 뭘 알아야 대처라도 할 텐데, 인생은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어 미리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뜻밖의 불행이든 예고된 불행이든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살면서 얼마만큼이 되었든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불행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불행을 피해 갈 방법이 없다면 적어도 안식처를 마련해두는 게 낫지 않을까? 괴로울 때 도망갈 틈새를 두고 힘들 땐 그 틈새에서 좋아하는 것들에게서 힘을 얻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굳이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엇이든 남들이 보기에는 별 거 아니더라도 자기에게는 힘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마치 기본 비상 키트처럼 구비해놓길 바란다. 그리고 거기서 잠시 피해서 맘을 추스르고 힘을 얻은 다음에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헤밍웨이가 말했듯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도 다시 또 일어서면 된다.




힘들 땐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잠깐 쉬어가요. 충분히 쉰 다음에 다시 일어나면 되요.



오손도손 모여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참고자료>

- 작지만 확실한 행복 -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여주는 작지만 큰 세계  (무라카미 하루키 저, 김진욱 역, 문학사상사, 2010.01.20)

-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 -덴마크 행복의 원천 (마이크 비킹 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24일

- 덴마크 사람들처럼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에게서 찾은 행복의 열 가지 원리 (말레네 뤼달 저 / 강현주 역 | 마일스톤)


- 책의 향기] 하버드대가 75년 추적한 행복의 비결 (신성미, 동아일보, 2013.09.28)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30928/57880418/1)


- [한컷 뉴스] '휘게'가 뭐게?  (함초롱 PD. YTN Plus, 2017.08.11) (https://www.ytn.co.kr/_ln/0116_201708111102191834)


- 덴마크, 행복도 세계 1위 비결...‘휘게(hygge) 라이프’ 10 계명 (시정민 조선 pub 기자, 2016.12.28)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nNewsNumb=20161222503&nidx=2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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