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커피 브레이크의 여유가 필요한 이유
북유럽의 커피는 달지 않다. 북유럽을 여행할 당시만 해도 나는 단맛 나는 커피만 마셨는데 무엇을 시키든 내가 원한 달달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맛을 원했던 나는 믹스커피가 그리웠다.
사실 나는 커피를 잘 모른다. 쓴맛이 나서 잘 안 마시기도 했고, 한 모금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거리며 밤에 잠이 안 오는 카페인 민감성 인간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커피를 마시게 된다. 야행성인 내게는 하루가 너무 일찍 시작하고 길게 느껴진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일찍 끝나야 5시간은 더 있어야 하고, 늦게 끝나면 정말 대중이 없다. 그 긴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짬을 내어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여유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커피를 많이 마신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을 보면 이탈리아가 세계 1위일 것 같지만 핀란드가 1위다. 그리고 그 아래로 줄줄이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웨덴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티타임처럼 스웨덴에는 피카 FIKA라는 커피 브레이크가 있다. 이들은 이때 친한 동료나 친구들, 가족들과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시나몬 번과 과자, 과일 등을 곁들여 먹기도 하며 담소를 나눈다.
아침 8시에 일과를 시작하는 이들은 이르면 오후 3시 반에서 늦어도 5시 전에 대부분 일이 끝난다. 해가 짧은 겨울이 그렇게 길면서 어떻게 그렇게 일찍 일과를 시작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면 그래서 커피 소비량이 그렇게 많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핀란드인들은 길고 추운 겨울 때문에 따뜻한 커피를 물처럼 즐겨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2017년 10월 코펜하겐에서 초겨울에 가까운 우중충한 가을 날씨를 경험하고 나도 새삼 커피의 맛에 빠져들게 되었다. 비 오는 어느 토요일, 나는 기차를 타고 핀 율 하우스 뮤지엄에 갔다. 비도 오는데 낯선 곳을 찾느라 지쳤던 나는 Ordrupgaard 미술관의 전시작품들을 훑어보고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프렌치 프레스를 처음 이용해봤는데 좋아서 세 잔을 내리 마셨더니 지친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달달한 커피는 아니었지만, 같이 먹은 브라우니 덕분인지 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달달하게 느껴졌다. 통유리로 된 창 밖에는 수풀이 우거진 풍경이 펼쳐져 꼭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 기분이 상쾌했다.
커피의 맛에 빠져들게 된 나는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맛있는 커피란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코펜하겐의 토르브할렌 마켓에 있는 coffee collect가 인기가 있는 곳 같았다. 가보니 과연 마켓의 한 구석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었다. 나는 무난하게 라테를 시켰다. 갓 나온 라테는 따뜻하고 고소했다. 당시 나는 가지고 간 노트북이 고장 나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해 골치를 썩고 있었다. 주말에는 도서관이 닫아서 외딴 동네의 PC방까지 찾아갔다가 결국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골이 잔뜩 난 상태였다.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내 숙소로 돌아오려다가 이대로 내 소중한 일요일을 말아먹고 돌아가기 분하기도 하고 해서 홀린 듯 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커피 한 잔에 나는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른 듯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넋을 놓고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나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내가 어쩔 수도 없는 것을 쫓아다니느라 여행까지 와서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 나 스스로가 좀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를 그만 몰아붙이고 나에게 틈(break)을 주자.' 숨 쉴 틈이 생기자 나를 뒤덮고 있던 짜증에서 벗어나 비로소 주위의 주말 풍경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아주 막연한 생각이지만,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일상의 위로가 되는 한 순간, 그 한 토막의 여유 덕분에 삶은 삐걱거리면서도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숨통이 트일 정도의 여유를 주는 것은 일상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 같다.
'When nothing's going right, go left.'
한 외국인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알려줬다. 영어로 쓸 수 있는 해학적 언어유희 같지만 그 안에 지혜가 은근히 숨어 있어서, 읽고 나서 피식하며 '그렇지.' 싶었다. (한국어에서는 '기분이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 정도와 비슷할 듯하다.) 살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듯 답이 없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하나만 보며 달려왔는데 가보니 이건 아닌 거 같고,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그런 일이 다반사다. 팽팽히 쪼인 정신줄이 끊어질 것만 같다. 그럴 때 쫓기듯이, 답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적인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대안은 있다.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뿐. 시야를 넓히면 정답이라고 느껴지는 답은 아니더라도 그 대안은 늘 틈새에 골목길 같이 있다.
세상에는 콜럼버스가 달걀을 깨서 세운 것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 늘 어딘가에 숨어있다. 그리고 그런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가끔씩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숨 막히게 빠르게 달리기만 해서는 골목길을 보지도 못하고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가끔씩은 멈춰 서서 숨을 골라야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길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더 이상 단 하나의 답에 목숨 걸고 살지 않을 수 있다. 이게 아니더라도 나는 살 수 있다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전보다 더 살만 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