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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Nov 02. 2018

길게 보면 도움이 되는 냉정함

'정'없어 보이는 사회의 장점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북유럽의 문화 가운데 하나는 다정하다고 생각한 이들이 가끔 내보이는 생각보다 냉정한 태도이다. 앞에서 언급한 이들의 솔직한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할까?


실수로 물을 엎지른다거나 할 때 우리는 종종 “그럴 수도 있지.” 혹은 “어쩔 수 없지.”라는 식으로 괜찮다고 봐주고 위로하고 넘어가는 반면 이들은 “그러니까 조심했었어야지.”하는 약간 냉정한 태도로 반응한다. (물론 이는 100%는 아니고 상당 부분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보이면 당사자는 좀 무안해지고 머쓱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들의 이런 냉정한 태도는 우리로 보면 정이 없다고 느껴져도 길게 보면 ‘정’으로 실수를 무마시키면서 도리어 일을 키우는 한국 사회의 문제 같은 것들을 예방하지 않나 싶다.  


이들 북유럽 국가들은 공직자 투명도 부분 등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흔히 정에서 감싸주는 문화 자체가 없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일례로 자타가 공인하는 스웨덴 총리 후보 1순위였던 모나 살린 은 노동부 장관, 당 총서기, 부총리를 거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가족 해외여행 중 장관 전용 법인 카드를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했고, 월말 봉급 수령 후 변제를 했지만 사용된 공금의 일부가 2개의 초콜릿 구입이라는 미미한 액수에 불과하더라도 공금 유용금지 법률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결국 사퇴를 하고 정치 인생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액수로 문제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금액이 미미하니 사임 같이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한국에서 부패 문제는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고질병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늘 비리에 관련된 문제가 불거져서 뉴스의 화두에 오른다. 공금 유용에서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는 게, 보다 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하는 상식의 선을 넘은 어처구니없는 게 많다. 그리고 떳떳하다면 왜 제대로 감사를 받지 않는지 의문이 들뿐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데, 뉴스에 나타나는 것은 온통 소도둑들뿐이니 소도둑이 될 때까지 뭐했나 싶은 허탈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 ‘비밀의 숲’이라는 한 인기 드라마에서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 타인의 감정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사회성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일명 소시오패스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극 중 인물들은 모두 현실의 인물들처럼 각자 자기의 입장이 있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세상에 100명이 있다면 100명의 입장이 다 다르며,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설령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도 그 안을 면밀히 살펴보면 내용과 방법이 다를 수 있다. 인간은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제삼자의 눈에서 보기에는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선을 넘는 경우가 있어도 스스로 정당화하곤 한다. 이 드라마가 화두로 던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옳은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도 옳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리고 '예외'란 존재하는가.


따지고 보면 많은 문제들이 작은 하나의 원리원칙이 안 지켜지고 무시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원리원칙이 무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은 종종 융통성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되곤 한다. 제도의 붕괴와 사회의 붕괴는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다. 배가 침몰하는 것은 균열이 생기고 그 안에 물이 새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예외로 적용되는 법이란 '법 앞의 평등'이란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공정한 기회의 상실, 공정한 심판이 부재한 법,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형량이 누군가는 무죄 혹은 가벼운 형량이 내려진다면 누가 어떻게 시스템을 믿을 수 있겠는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다 감옥에 가지 않은 정치인이 거의 없다. 특히 우리 사회는 ‘정’으로 인한 부패 문제가 유독 많이 생긴다. 어떤 이권이 있는 곳에는 그 중심의 주변에서 '정'과 연줄에 기대어 혜택을 얻으려고 하곤 한다. 이런 부탁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화의 중심에 바로 연정 주의가 있다. 그러나 애정이 있을수록 우리는 냉정해져야 한다. 스스로를 감시하고 자정 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면 부패하게 된다.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 힘 때문에 피해를 입고도 피해자가 도리어 불이익을 당할까 봐 침묵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감시'를 통해 견제를 할 힘이 없어진다면 균형을 잃고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을 가진 자의 영향력이 크고 강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게 된다.


대학 시절 학부 조교를 하며 한 학기를 마무리할 때, 학과 교수님들과 조교 회식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치 이야기가 나왔고 어떻게 권력자의 부패를 막을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열띠게 논의를 했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던 나는 옛날 학자들이 말하듯 도덕군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자 이를 옆에서 듣던 한 노 교수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다.


“시민이 감시자가 되어 부패하지 않도록 늘 감시해야 해.”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현실에서는 영화나 만화 같은 데에 나오는 '영웅'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니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저 '실수'라고 넘길 수는 없다. 어떤 이(혹은 집단)가 가지는 힘이 강할수록, 그 힘에 따른 책임 또한 크다. 스스로 자기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살펴야 하겠지만, 투명성의 제고를 위해서는 외부에 정보를 공개하고 상시 감사를 허용해야 한다.


북유럽의 부패지수가 낮은 것은 북유럽 사람들이 특별히 날 때부터 청렴한 종족이라 서라기보다 '투명성'을 기본적 가치로 여기고, 일반국민의 참여를 허용하는 등 정보를 공개하는 문화와 솔직한 비판을 통해 견제를 허용하는 사회를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북유럽의 감사제도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노르웨이에서는 상시 감사를 하며, 스웨덴에서는 감사원을 통해 잘못이 밝혀지는 것보다 언론이나 주민들의 만족도를 통해 밝혀지는 게 더 많다고 한다. 투명성과 책임감을 중시하는 사회풍조를 바탕으로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사회에서 허튼짓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가까울수록, 아낄수록 무조건 상대방을 감싸주기보다 더 냉정한 조언자가 되어야 한다. 비판과 비난이 다르듯이, 믿는 것과 덮어놓고 감싸는 것은 다르다. 비난이 그저 상대를 상처 입히는 한편, 무조건적인 감싸기는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아끼는 이가 길을 잃지 않고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그들의 잘잘못에 누구보다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올바른 비판을 할 수 있는 냉정한 조언자가 되어야 한다. 물론 그게 혐오 등의 감정에 치우친, 인신공격성의 비난이 아닌 발전을 위한 비판이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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