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그들에게 알려준 것

정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약점을 통해 강점으로 거듭나는 지혜

by moka

북유럽 사람들에게 북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좋았다고 말하면 그들은 다들 하나같이 “네가 여름에 여행을 왔나 보구나?!”하고 확신에 차서 대답한다. 북유럽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도 그들은 입을 모아 여름에 오라고 한다. 그들 말대로 나는 여름에 북유럽을 다녀왔기에 대체로 날씨가 덥지도 않고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북유럽을 찾았던 때로부터 2년 후, 2017년 10월 중순에 나는 덴마크를 다시 찾았다. 10월의 한국은 정말 날씨가 적당히 서늘하고 좋은데 덴마크 친구는 나보고 코트를 준비해오라고 했다. 도착해서 바로 코트를 꺼내 입으며 비로소 나는 왜 북유럽 사람들이 여름만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코펜하겐은 그나마 북유럽 중에서는 남쪽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한겨울에도 오히려 서울보다 따뜻하다. 그러나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이라 그런지 바닷바람이 엄청 춥다. 북유럽에서 다 한 번씩 살아봤다던 노르웨이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말이 떠올랐다.


“덴마크는 노르웨이에 비해서는 남쪽이지만 바람이 엄청 세.”


바람만 엄청 센 것이 아니었다. 매일 흐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려서 해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비가 왔다가 안 왔다가 하는데 찔끔찔끔 내려서 우산을 쓰기도 뭐하고 안 쓰면 가랑비에 옷이 다 젖어버렸다. 날씨를 불평하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그러고 있는 것 같았다. 단지 내가 덴마크어를 못 알아들어서만은 아니고 그냥 그들에겐 그게 당연한 일상처럼 그들은 날씨의 변화에 동요하지 않고 담담했다.


덴마크뿐만이 아니라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는 길고 혹독한 겨울로 유명하다. 9월부터 기온이 빨리 내려가기 시작해서 이듬해 5월은 되어야 그나마 살만해진다. 그러나 5월에도 서늘하고 한 여름에도 30도를 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2016년인가에는 덴마크의 기온이 여름에도 25도를 넘는 날이 없어서 여름이 없는 해였다. 그러니 이들에게 여름이란 제아무리 백야가 온대도 일 년에 얼마 허락되지 않은 축제임이 분명하다. (물론 백야란 오로라처럼 극지방에 가까운 곳에서만 겪는다.)


날씨의 영향을 잘 받는 나란 사람은 그들의 그런 평안함이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해가 떠도 내내 구름에 가려서 하루 종일 칙칙하고 꾸물거리는 게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이런 날씨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니! 그 순간 내게 이것은 거의 정신승리처럼 느껴졌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덴마크 친구에게 어떻게 그런 날씨에도 행복할 수가 있냐고 그러니 그 친구는 "우리는 날씨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야.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좋은 사회 시스템 등이 갖춰져 있어서 행복한 거지."라고 단언해버렸다. 그 말마따나 복지가 좋지 않다면 북유럽은 정말 살기 힘든 곳일 것이다. 아니 복지가 그렇게 좋아도 날씨가 좋은 곳을 찾아서 북유럽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애초에 전쟁 후 못살던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가 좋아진 이유도 척박한 환경의 북유럽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서라고 했다.


극심한 더위도 싫지만 추위도 싫어하는 나는 겨울이면 그렇게 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방랑벽이 있냐고 하던 버릇도 자취를 감춘다. 오죽하면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가 엄마로부터 "네가 철새냐?"라는 소리까지 들었을까. 그러니 추운 겨울이 길다는 북유럽에서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게 내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회복지가 아무리 잘 되어 있다고 한들 거대한 자연이 미치는 영향을 무조건 긍정하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북유럽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복지도 복지지만 그야말로 이 척박한 환경에서 북유럽 국가들이 세계 행복도 최상위권을 나란히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복지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복지 저변에 깔려 있는 가치가 있었다. 춥고 적막한 자연환경에서 느끼는 사람의 소중함이 그 가치의 근원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에 있으니 출퇴근 지옥철과 만원 버스에서는 느껴볼 수 없던 인류애가 피어났다. 사람이 그립고, 어쩌다 한 번 마주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추위가 더위보다 한 가지 나은 점이 있다면, 주변 사람의 온기를 그립게 만들고 주변인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혹은 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그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그들은 누구보다 빨리 행복해지기 위해 행복에 대해 연구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지뿐만이 아니라 각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등을 추구하며 그들이 피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불행해지지 않도록, 즐기도록 애쓰는 것이다.


길고 추운 겨울 때문에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자연히 그들의 관심은 인테리어로 이어졌다. 편안하고 아늑한 조명과 나무로 만들었지만 오래 앉아있어도 편한 인체공학적 의자, 햇볕이 모자라도 우울해지지 않을 정도로 밝은 벽지와 알록달록한 소품들. 이들 모두 북유럽 사람들이 길고 추운 겨울을 버텨내기 위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핀란드 디자인의 대부 '알토'의 이름을 딴 헬싱키의 '알토 카페'



북유럽 사람들은 약 반년 정도의 시간을 겨울로 살아가면서 겨울을 부정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살아간다. 한국도 10월부터 3월까지 추운 것을 생각하면 겨울이 거의 반년 가까이 된다. 봄을 애타게 그리면서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사는 것은 어찌 보면 현재를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인생은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가 나타나 구원해주어야 제대로 된 삶이 시작되는 게 아니고, 고도를 기다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부정하는 것 역시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행복한 순간이란 내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의 상대성이랄까. 내내 평안하기만 한 삶이라면, 즐거운 일들만 있다면 그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어려움이 있어야 감사하게 깨닫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라는 영화에서 이혼을 앞둔 한 여자가 흥신소에 남편의 불륜 증거 확보를 부탁했다가 증거 사진을 받고 불륜을 확실히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알려준 직원이 이걸 알게 된 것을 후회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담담하게 "그것까지도 모두 내 인생이니까요."하고 대답한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셀 수도 없게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고, 지금의 나란 인간은 그것들을 통해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결론에 닿는다. 그리고 현재의 자기를 부정하는 것만큼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있을까?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모두 내 삶이니까요.’



웨스 앤더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알록달록하게 옛날 슈퍼마켓을 재현해놓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르딕 박물관


북유럽의 긴 겨울은 분명 누구에게도 즐겁기만 한 시간은 아닐 것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그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가장 행복한 나라들이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어쩌면 모든 인간의 고민이 아닌가?


이미 주어진 환경 자체를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게 행복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행복이란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로 나오는 할머니가 한 말처럼 '무언가를 포기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행복'이란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결핍을 인정하고 '이 정도만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을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인생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우리 뜻대로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 제 아무리 행복하다는 북유럽 사람들도 춥고 긴 겨울이 싫어서 비타민 D를 먹으며 이겨내고 있지 않은가. 해가 늦게 뜨는 것을 빨리 끄집어낼 수도, 일찍 지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삶이란 때론 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이게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버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능한 한 최대한 즐길 수 있게 바꿔보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도록 그 안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취하고,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으로부터 멀어지라는 말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열심히 붙잡고 좋은 기운을 받길 바란다. 싫어하는 것은 웬만하면 되도록 피하라. 정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방법을 최대한 찾아보는 것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긴 겨울을 통해서 배운 것의 핵심은 행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다. 무신론자가 특히 많은 북유럽 사람들은 다소 세속적이다 싶을 정도로 여러모로 굉장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는 행복하기 위해서 멈출 줄 아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다. 어느 직군을 택하든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평등함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굳이 힘들여서 공부를 해서 교수가 되려 하거나 그런 생각이 없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불행할 바에는 차라리 중고등학교 선생님을 하겠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극도로 경쟁을 피하며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을 과감하게 차단하는 면모가 엿보인다.


북유럽의 사회적 여건이 다른 상황에서 북유럽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무조건 따라 한다고 해서 행복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다. 당장 현실적인 조건이 어려운 사람에게 북유럽 사람들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지라는 이야기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스템의 개선이라는 거대한 결과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끊임없이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향점을 향해 가되 우리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의 삶이 불행한 사람에게 먼 미래의 행복을 생각하며 참으라는 것은 너무나 막연해서 와 닿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이라는 것은 아는데,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바로 행복이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포탄이 날아오는 와중에 몸을 피하다 발견한 게 네 잎 클로버라서 행운이라고 한단다. 찾기 힘든 네 잎 클로버를 찾으려 하면서 세 잎 클로버는 뒷전이 곤 하는데 그 흔하디 흔한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니 왠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고인이 된 마왕 신해철은 언젠가 '꿈이 꼭 행복이랑 직결된다는 것은 아니다. 꿈을 이룬다는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말을 했었다. 때로는 어떤 대단한 행운을 뜻하는 성공을 손에 쥐려고 하는 동안 우리 삶의 소소한 행복들을 괄시하거나 놓치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것을 잡기 위해 탐내느라 잊고 있었지만 어쩌면 행복은 파랑새처럼 내 곁에 이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어떤 대단한 성공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칼바람 속에서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의 온기가 주는 행복을 발견하듯이, 어려움 속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항상 좋은 면을 발견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밖에 나가기 싫어지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일룸 백화점 가구매장



*무신론자가 많다는 것은 2018년 마이클 부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참조.

(2015년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스웨덴 76%, 2016년 노르웨이 조사에 따르면 2/3가 무신론자로 나타남. 2012년 헬싱키 타임스에 의하면 핀란드 2/3 이상이 무신론자라고 함, 2015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덴마크의 19%만이 종교가 삶에 중요하다고 함.)


세속적이라는 부분은 기사 'Challenges of the secular society'(Next Scandinavia, 13th October 2014 by Andersen)중 일부에서 발췌. 'Scandinavian Nonbelievers, Which Is Not to Say Atheists' (뉴욕타임스, PETER STEINFELS FEB. 27, 2009)

; 역자 주- 완벽한 무신론이라기보다는 비종교적(non-religious)에 가깝다고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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