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북유럽의 보육 육아정책
교환학생 때 만난 한 핀란드 친구가 어느 날 페이스북으로 임신 소식을 알렸다 그녀의 포스트에서 인상이 깊었던 점은 말로만 듣던 국가의 임신 축하 선물 박스, 일명 ‘마더 박스’를 직접 보았다는 것이다.
'출산 패키지'라고 불리는 이 상자, 마더 박스는 1930년대 핀란드에서 전쟁으로 인한 가난 때문에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는 임산부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져 오늘날에는 '출산 용품을 선물'하는 의미로 이어져오고 있단다. 여기에는 생후 12개월까지 산모들이 출산한 후 아기에게 꼭 필요한 육아용품- 각종 배냇저고리, 잠옷, 내복, 외출복, 방한복, 모자, 방한모자 및 장갑, 양말, 속싸개, 수건, 이불, 젖병, 딸랑이, 칫솔, 손톱 가위, 그림책, 재활용 천 기저귀, 턱받이, 육아 안내 소책자, 간단한 의료용품 등-과 산모를 위한 출산 패드, 브래지어 패드, 산모 크림, 위생수건, 피임기구 등 총 70종 이상의 용품이 들어있다고 한다. 게다가 상자는 매트리스가 깔려 있어 아기의 침대로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하니 가히 획기적인 선물 세트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핀란드는 출산과 산모를 최우선으로 삼는 국가 기조에 따라 매년 새로운 아이템과 새로운 메시지를 담아 산모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전달한다고 한다. 상자의 내용물과 디자인이 해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상자만으로도 아이의 출생연도와 당시의 사회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참고로 디자인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유니섹스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마더 박스는 처음에는 전쟁 후 어려운 형편에 아이를 키우기 어려웠던 부모들의 극단적 선택으로 1000명 중 65명 꼴로 높던 영아사망률을 방지하기 위해서 1937년부터 저소득층 임산부에게만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대상이 확대되어 1949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임신이 확인된 여성이 정부에 신청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육아용품이 이미 준비되어 있는 여성에게는 140 유로(한화 18만 원 상당)의 현금으로 지원이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가정이 출산장려금보다는 마더 박스를 선택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굳이 최고급으로 구성된 100만 원 상당의 물품으로 받는 것이 이득이라서만이 아니고, 국가가 신경 써주고 있다는 애정이 느껴져서라고 한다. 80년 가까이 이어져오고 있는 이 핀란드의 전통은 핀란드에서 얼마나 임신과 출산을 국가 차원의 중요한 과업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주변의 지인들이 임신을 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각종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고 축하 선물도 준비하다 보면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은 정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무시무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과 관련된 것들은 특히 위생이 중요하므로 자주 소독도 해야 하고 생각보다 그 하나하나가 그리 저렴하지도 않다. 게다가 12개월 전까지는 하루가 다르게 얼마나 쑥쑥 크는지 필요한 것은 많으면서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짧다. 이런 부분들을 국가 차원에서 신경 써주고 있다면 적어도 출산장려정책이 의미 없다는 생각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주변에 결혼을 한 지인들 중에서 아이를 갖는 경우, 하나만 갖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둘을 갖는 경우도 보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주로 남편의 수입이 안정적이라 한 명이 외벌이가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혹은 두 아이를 낳고도 여성이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흔치 않고 아직 돌아가서 근속연수가 높은 경우는 많이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따르면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 하나가 다 필요하다고 한다. 출산을 한 지인을 보고 있으면 그 말마따나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기 좋은 환경이 되어야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비단 어느 일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결국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률이 높은 고소득 국가이지만 출산율도 안정적인 북유럽의 보육 육아정책을 살펴보면 출산 이후에도 유지되는 여성의 일자리와 더불어 남성 육아휴직제도가 공고히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가 보육과 육아를 공공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 남녀평등에 주안점을 두니 출산율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사회참여율과 임금이 평등해지기만 한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녀평등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서 그 사회에 녹아있는 철학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남녀평등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게 공교육의 붕괴를 막거나 사교육의 성행을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 그렇다.
얼마 전 대한민국을 강타한 'SKY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안 본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유명했던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 자녀를 명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한 상위층 부모와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액의 입시 코디를 붙여서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행동을 하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인륜적 행위까지도 용납한다. 드라마 작가는 이런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하는데 방영 결과 오히려 입시 코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니 현실은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북유럽의 경우 대학까지 학비가 무상이다. 심지어 학생들은 국가에서 용돈까지 받으면서 다닌다. 한국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일까? 반값 등록금이나 무상교육의 중요성은 알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실현 가능성을 두고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교육은 개인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는 반면, 북유럽에서는 학생들의 교육을 국가적 차원의 '인력 투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 붕괴와 치솟는 사교육의 문제, 매해 바뀌는 입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는지를 뉴스에서 본다면 한국의 교육은 사회 전반과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키울 여력이 안 된다는 점에서 낳기를 주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북유럽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국가 기조로 우선순위에 두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 한 이미 기울 대로 기울어버린 저출산의 시곗바늘을 되돌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아동 청소년과 관련된 각종 문제가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항상 뒤처져 있다. 아동청소년 문제는 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는 듯하다.
어린이 집 폭력 문제 등만 봤을 때에도 한국의 어린이집 등은 이미 구조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 한국 어린이집 교사의 경우 높은 노동강도와 불안정한 지위에 퇴사율이 높다. 따라서 저임금 저 숙련 노동자를 양산해내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스웨덴의 경우 급여는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준공무원 급으로 안정적이다. 한국 어린이집의 경우, 노동강도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 아이 하나 돌보기 힘들어서 어린이 집에 맡긴다는 한 어머니가 한 명의 어린이 집 교사가 여러 명을 돌봐야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아이가 있는 집이나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인 한 명이 아이 하나도 돌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다. 아이는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그 사이에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 십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의 경우 돌봄 대상에 비해서 선생님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낮다.
북유럽의 경우, 대체적으로 한 선생님 당 담당하는 아이들의 수가 비교적 적다. 2015년 기준 한국이 어린이 집에서 통상적으로 만 3세 이하의 아이들 15명을 교사 한 명이 돌봐야 한다고 했을 때, 북유럽의 경우는 선생님 세 명이 돌본다. 선생님 한 명이 많은 아이들을 동시에 돌보며 한 명 한 명에게 주의를 다 기울이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선생님도 하나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지속 가능한 교육 환경 생태를 만드는 걸 저해한다. 고강도의 노동을 장시간 해서 지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일개 평범한 인간으로서 나는 사명감에만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문제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쥐어짜는 구조는 그 인간을 번아웃 되게 만들고, 소진된 인간은 쓰레기처럼 치워지고 다시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며 악순환을 반복하다 쇄락하게 된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인간에게 있어 어린 시절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인격형성이 어렸을 때 형성된다는 점에서 볼 때,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청소년기의 과정에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핀란드의 '마더 박스'는 단순히 물품의 제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똑같은 것을 제공받아 그것을 사용하며 큰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찍이 평등을 경험한다. 그 평등의 경험은 아동청소년기에 교육을 통해 이어지고 개인들은 평등의 개념을 가진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불평등을 세습하고 내재화하는 구조에서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것은 성인이 잠깐의 성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에게 남들과 평등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다른 사람 역시 자신만큼의 권리를 가진 존중할만한 존재라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한국은 두 차례의 전쟁을 겪은 이후로 그 영향 하에 살아왔다. 누군가는 운이 좋아 개발을 하며 졸지에 부자가 되기도 했고 누군가는 전쟁으로 가진 것을 모두 잃기도 했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 '아메리칸드림'을 쫓고 있지만 어디 있는지 모를 새로운 시대의 금광만을 좇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만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것만 배우는 세상에서 피라미드의 밑바닥이 사라지면 꼭대기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른 사람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세상은 결국 누군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이나 어려운 일을 해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인데.
마음의 상처, 특히 어린 시절에 겪는 마음의 상처는 특히 오래간다. 유년기의 트라우마는 한 인간의 생애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개인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행복한 곳을 만드는 것이 바로 그 길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믿는다. 가장 힘이 약한 약자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닐까. 이제 아동수당도 지급된다고 하는데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환경 자체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더딘 것 같고 아무런 결실도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길고 느린 과정 속에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참조
- 스웨덴은 어떻게 육아 천국이 되었나?…“스웨덴은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엄진아, KBS, 2018.11.02)[취재지원: 한국 언론진흥재단]
- 돌도 안 된 아기 셋을 교사 한 명이 보라고?(박현정, 한겨레, 2018-06-08)
- 선진국 보육교사들은 아이를 어떻게 돌볼까 (한유미, 한국일보, 2015.01.29)
- 노르딕 4개국의 보육정책 사례를 통한 우리나라 보육 및 육아지원정책방향에 관한 연구 (박언하, 한국생활과학 회지 제26권 6호 2017)
- EBS 다큐프라임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 교육(2013.01.22)/보육(2013.01.21) 편
- 2015년 핀란드의 산아정책, 엄마를 위한 아기 상자 (2015.12.22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