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과 로봇세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최근 인터넷에서 한 재미있는 인력 모집 광고를 봤다. 일명 '불 끄기 일자리'로, 2026년 완공되는 스웨덴의 예테보리에 2026년 완공되는 코르스베겐 기차역에서 아침마다 출근해 승강장 형광등을 켜고, 해가 지면 불을 끄고 퇴근하는 게 전부다. 출퇴근 사이엔 영화를 보든, 잠을 자든, 역 밖에 있든 상관없다. 월급은 2만 1600 크로나(약 260만 원). 여기에 연봉 인상, 휴가, 퇴직연금까지 보장된다. 이거야 말로 진정 '개꿀' 직업 아닌가?! 인터넷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하고 싶다며 난리가 났다. 스웨덴에서는 왜 이런 일자리를 모집하는 걸까?
이는 '영원한 고용'이란 이름의 프로젝트로, 미래에 기계에 일자리가 대체될 인간들이 할 일은 불을 껐다 켰다 하는 정도가 되어 인간들은 수만 년의 노동의 역사에서 벗어나 잉여인간의 시대에 진입하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인류 역사는 내내 노동을 가치 있게 여겨왔는데, 기계에게 일자리를 뺏긴 인간은 노동을 할 수 없어진다. 그러면 비생산적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조적인 의미의 블랙 유머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계에 일자리를 잃는 인간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과거 인클로저 운동 때에도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무인 카페와 무인 호텔, 청소로봇, 자동 주행 자동차, 택배를 운반하는 드론 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전문직이라 할 수 있는 암을 진단하는 로봇과 치료하는 로봇, AI 로봇 변호사까지 다양하다.
이미 2014년 가트너 심포지엄에서 가트너는 2025년이면 현재의 일자리 33%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2025년이면 10년도 남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듯 매해 '자동화로 대체될 위험이 큰 직업군과 낮은 직업군'을 작성한 표가 인터넷을 떠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일수록 대체되기 쉬운 것으로 나오며, 창의성을 요구하는 직업군일수록 대체되기 어렵다고 나오지만 사람보다 글을 잘 쓰는 로봇도 있다니 확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계에 일자리를 뺏긴 인간은 손 빨고 있다 굶어 죽어야 할까?
이를 두고 인클로저 운동 때처럼 기계의 등장으로 그와 관련된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이라며 사람들을 위로하는 목소리도 있으니 마냥 비관하기는 이르다. 드론도 드론 조종사가 있고 로봇도 로봇을 만드는 사람과 수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노력이 들 테고 인간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계는 아프지도 않고 쉴 필요도 없다. 4대 보험을 들어줄 필요도 없고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한다고 불평할 일도,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파업을 할 일도 없다. 한 마디로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24시간 365일, 시키는 대로 일할 수 있는 기계를 쓰는 게 비용절감이 되어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득이 된다. 그 와중에 그 로봇이 알파고처럼 인간 지능 이상으로 뛰어나다면, 왜 쓰지 말아야 하는지 유혹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결과적으로 로봇에 일자리를 잃을 운명의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 빌 게이츠 등은 로봇에게 '로봇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용을 절감했으니 막대한 이익을 남긴 기업에게 그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는 논리이다. 기업은 같은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잃은 인간들로 인해 세수가 줄어든다면 국가는 궁극적으로는 국가적 위기에 처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활동하는 유명 칼럼니스트인 팀 던롭은 <한겨레>에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방법으로 로봇세와 기본소득 도입을 제시하였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기본소득이란 뜻만 봤을 때는 '조건 없이 모든 시민에게 일정액의 소득을 동일하게 지원해 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그와 관련된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실상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 기본소득 실험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단연 2017년부터 2018년 12월 말까지 진행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다. 2018년도의 결과를 다룬 최종 연구 결과 보고서는 2020년에야 나온다고 하지만 2017년의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2019년 2월 8일 약식 보고서가 나온 바 있다.
실험을 할 당시 핀란드에서는 우파 정권으로 높아지는 실업률과 복지비용의 부담으로 어떻게 하면 이를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이들은 현재의 복지급여를 대부분 대체하는 완전 기본소득, 상당수의 기초적 사회보장 급여와 소득연계 급여들을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지급하는 부분 기본소득,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참여소득(participatory basic income)을 비롯한 네 가지 모델들을 검토해달라고 주문하였다. 따라서 본 '기본소득' 연구는 진정한 의미의 '기본소득' 연구와는 거리가 먼, 정부의 의도에 따라 수정되어 진행이 되었고 기존 기본소득 지지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원래 올리 캉가스 교수가 이끈 연구팀이 진행하려던 '기본소득' 실험은 부분 기본소득 모델로, 실업자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25-63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25-58세의 기초 실업급여 수급자로 대상을 결정했다. 표본은 저강도 전국단위 무작위 표본추출 (low intensity random sampling)과 함께 지역 실험을 병행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지역 실험은 예산 제약으로 인해 채택되지 못했다. 또한 표본의 편향을 방지하기 위해 실험 참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그대로 채택되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핀란드 정부가 전국적으로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서 2년 동안(2017년 1월 1일-2018년 12월 31일) 매달 560유로를 어떤 조건도 없이 지급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복지제도의 모든 혜택이 사라지고 기본소득만 남는다면 기본소득은 애초에 그것을 받지 않는 것만 못한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따지는 것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기로 하겠다.)
약식으로 나온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결과에 관해서는 고용 효과와 후생 효과의 측면에서 설명했다.
고용 효과는 실업급여를 받은 경우와 비교했을 때 증감 여부가 비슷했다. 흔히 돈을 더 주게 되면 나태해져서 일을 안 구한다는 것이 기존의 편견(?)이었다면, 실제로는 사람들이 돈을 받아도 나태해지지 않고 똑같이 일을 구했다는 것이다.
후생 효과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컸다. 기본소득을 받은 실업자는 건강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크고, 일자리를 찾겠다는 의욕과 그럴 것이라는 자신감도 컸다. 실업급여 관련한 관료행정의 불편함도 적어졌다.
핀란드의 본 연구팀은 이 연구의 대상자를 확대해서 다양한 층위를 포함해 진행할 것을 제안하였지만 정부에서는 고용 효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 더 이상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일부, 아니 어쩌면 상당수의 언론은 섣불리 '기본소득 실험은 실패'라고 단언했다.
애초에 고용 효과를 목표로 둔 것은 경제학적 가설 측면에서 반대에 가까운 '돈의 필요성이라는 유인이 낮아도 일자리를 구하겠는가'와 거의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를 실험의 목표로 제시한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
실험의 기간이 2년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한계점을 생각했을 때 연구의 결과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란 어렵다. 2년, 아니 현재 나온 것은 2017년도의 결과라고 했을 때, 1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후생 효과', 일명 '웰빙 효과'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의문이 든다. 우리는 흔히 '웰빙 효과'에 대해서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측면이 강하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밑에 안 보이는 측면에서 예방적인 차원의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잘 돌아가고 있을 때, 그것이 잘 돌아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감사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니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문제 상황에 직면하여 비로소 사회를 받쳐주는 각종 제도들과 그 효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불만이 많고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흔히 범죄자들은 타고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만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그렇게 변화되는 경우도 많다.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사회에 불만이 생긴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문제적 인물이 되는 것을 흔히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자기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행복한 것을 바라고 잘 살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는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문제없이 행복한 사회가 되기란 어렵다. 사회복지란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 사람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그걸 단순히 비용이라고 여기는 것은 근시안적 사고의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본소득은 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할 미래가 아닌가 생각한다. 창의적인 일자리들은 대부분 프로젝트 성격을 띠고 있다. 장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었던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역시 평생 쓰고 평생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듯이 대체로 한 작품의 완성을 기준으로 급여를 받는다. 영구직이 사라지게 되면 장기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보험의 성격도 바뀌게 될 수밖에 없다. 6개월 이상을 일해야 실업급여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구조에서는 그 미만으로 일하게 되는 임시직은 영원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새로운 일자리는 새로운 기술을 요구할 것이고, 그것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기술을 터득하는 동안 당장 먹고 살 돈도 없다면 기술을 배우는 대신에 당장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일만을 하다가 시간을 다 써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너무 많이 발전한 기술을 따라잡기 힘들어 도태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황정은의 ‘양의 미래’라는 소설을 보면 형편이 좋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한 여자가 와병 신세의 어머니와 그를 돌보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찍이 고등교육을 포기하고 저 숙련 노동이 가능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게 나온다. 그녀는 별다른 기술이 없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며 결혼과 출산을 비롯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는 N포 세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는 시대에서 그녀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취약층이다. 그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사는 수준의 삶에서 나아가기 위해서 다른 기술을 연마할 정도의 여유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 하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심한다. 기본소득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능키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새로운 시대로 가는 징검다리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요새 박막례 할머니의 유튜브를 즐겨 보는데, 어느 날 맥도널드 키오스크를 이용하며 쩔쩔매시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솔직히 나도 맥도널드에 가서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나 어디에 물어볼 수 있는 인간 없이 기계만 있을 때 속으로 진땀을 흘린다. 기계와 친하지 않아서 곧잘 고생하기도 하고 그런 게 무섭기도 한데 점점 빨라지는 기술의 발전이 피곤하고 좀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거기다 나보다 언어를 잘하는 알파고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좀 더 천천히 흘러갔으면 하고 아날로그를 그리워하지만 이런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기계화의 진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숙명과도 같은 이런 필연적인 운명의 흐름으로 볼 때, 우리는 인간이 쓸모 없어지는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일을 수행하는 능력만으로 개개인의 가치를 매기는 방식은 언젠가 우리 모두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박막례 할머니의 유튜브에는 경륜에서 비롯된 주옥같은 인생의 진리가 나오곤 하는데, 하루는 '미녀와 야수'를 보고 할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야수가 '이런 괴물이어도 행복해요.'라고 했다면 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능력이 부족한 인간이 '괴물'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노동할 수 없는 인간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는 환경에서 인간의 가치를 능력으로만 따진다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기는 무슨 가치가 있나?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리 약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간마저도 사랑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참고문헌
"2025년, 전체 직업의 33%가 로봇으로 대체" 가트너 (Patrick Thibodeau, CIO Korea, 2014. 10.07)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되는 직업 순위는? 한국 고용정보원, 국내 400개 직군 분석 (장길수, 로봇 신문, 2016.03.24)
세계 첫 'AI 로봇 변호사' 美대형 로펌서 일한다 ( 황철환, 연합뉴스, 2016.05.17)
로봇에 세금 물리고 기본소득 도입하자 (음성원, 한겨레, 2017.02.06)
빌 게이츠가 로봇에 세금을 매기자고 하는 이유 (Brett Caron, 허핑턴 포스트, 2017.02.21)
전 세계 "기본소득 실험들" (박선미, 기본소득 한국 네트워크, 월간 <시대> 2017.06)
'월 72만 원'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행복도 상승·고용유발 미미(종합)(성혜미, 연합뉴스, 2019.02.09)
[유레카]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반응 톺아보기 (이창곤, 한겨레, 2019.02.11)
[논평]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예비 결과 발표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기본소득 한국 네트워크, 2019.02.11)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웰빙 효과, 고용 효과 나타났다 [기고] 기본소득제 도입, 우리도 핀란드식 실험정치를! (유종성, 프레시안, 2019.02.25)
[푕설수설/정임수] 불 끄기 일자리 (정임수, 동아일보, 2019.03.12)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정반대 해석 가능한 이유 (이상현, 슬로 뉴스,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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