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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윤 Apr 15. 2022

한국의 고시엔을 만들기 위한 제언

고교야구는 프로야구와 달라야 한다

표진 사진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사람은 일본 고시엔 야구 대회에서 패한 학교의 감독이다. 경기에서 진 뒤 교장으로 추정되는 학교 관계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감독의 유니폼 등번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옆 선수의 유니폼에 2번이 붙어있는 것과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일본 고교야구 감독의 유니폼에는 등번호가 붙어 있지 않을까?


일본 고시엔 야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물론이고 만화부터 시작해서 고시엔 좀 보았다는 야구팬들 중에서도 일본 고등학교 감독의 등번호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감독의 뒷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야구 감독은 더그아웃에만 있을 뿐 경기중 그라운드에 나서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나설 수 없다. 오심에 대한 심판 항의조차 금지되어 있다. 그럼 작전 지시나 투수 교체 등은 어떻게 하냐고?


일본 고교야구에만 있는 '전령' 이란 제도를 이용한다. 출전 선수 명단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 경기에 뛰지 않는 선수가 직접 마운드에 뛰어 올라가 감독의 지시를 전달한다.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판정 여부에 대한 '문의'를 할 때도 심판을 상대하는 것은 바로 '전령'이다. 감독이 직접 선수나 심판과 대화해도 오해가 생기 쉬운 상황에서 전령을 통하게 되면 감독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될 수 없고,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서는 것은 금지된다. 일본 고교야구에서는 등번호를 단 사람만이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등번호가 없는 감독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더그아웃으로 한정될 뿐이다. 


일본 고시엔 야구의 심판은 전원 자원 봉사자로 구성되어 있다. 고시엔 본선 무대에서 심판을 보기 위해서는 지역 대회에서 일정 기간 심판을 해야 하는 기준이 존재하지만 그 벽은 그리 높지 않다. 대부분 학생 시절 야구를 한 경험을 갖고 있지만 아무래도 직업 심판이 아니다 보니 전문 심판에 비해 판정의 정확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이 때문에 고시엔 대회에서는 오심이 종종 발생한다. 고시엔의 오심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분명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중에 감독의 항의는 발생하지 않는다.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열린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 고교야구대회는 88개 학교가 출전한 가운데 성황리에 치러졌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고시엔이 될 수 있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한국 고교야구의 영광을 이끌었던 4대 일간지 주최 대회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대기업이 거액의 상금과 야구 장비 지원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야구 대회를 만든 것은 침체에 빠진 고교 야구계에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회를 비롯해서 최근 국내 고교야구 대회의 모습을 보면 학생 야구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 아쉬움을 남긴다. 


대표적인 것이 감독의 지나친 항의 장면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분명 억울할 판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학생 야구에서 지나친 항의가 이어지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항의를 하는 감독들도 야구에서 판정 번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후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 경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항의를 하곤 한다. 프로라면 당연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아마추어 야구, 학생 야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친 항의는 학생 야구라는 본분을 벗어나는 측면이 있다.   


일본 고교야구는 일본 프로야구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 프로야구와는 달리 1번부터 18번까지의 등번호만을 착용하고,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할 뿐 아니라 감독이 항의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같은 고시엔 구장을 쓰는 한신 타이거즈의 경기를 볼 때와 고교야구 경기를 보는 것은 어쩌면 전혀 다른 야구를 보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프로야구와 고교야구의 수준 차이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고교야구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것은 프로야구와 구별되는 학생 야구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신세계 이마트배 결승전은 프로가 뛰는 문학 구장에서 열렸다. 경기전 프로 구단의 라커룸 및 시설을 둘러보며 선수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프로야구에 비해서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고교야구를 왜 보아 야한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한국의 고시엔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한국 고교야구는 프로야구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갖춰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그 첫출발은 감독의 항의권 제한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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